[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가재미
문태준(1970~)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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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간절한 목숨이 있다. 실날같은 삶의 가닥을 움켜쥐고 가재미처럼 한쪽으로 저물고있는 투병환자의 파랑 같은 날들, 더욱이 삶의 파란만장함을 등지고 모든 것을 놓아둔 채 죽음 저편만을 바라보는 그녀의 안타깝고 기막힌 삶의 정적은 캄캄하다. 그동안 그녀가 견디며 살아온 물 속의 삶과 누대의 가계를, 그리고 시시때때로 몰아치던 생이라는 폭설의 깊이를, 안타까이 반추하는 시인의 마음 역시, 따스한 연민으로 가득 찬 어쩔 수 없는 한 마리의 가재미일 뿐이다. 삶의 모든 궤적을 놓아버린 채 캄캄하게 저물어 가는 투병환자를 바라보며 심해의 가재미처럼 눈물을 찍어낼 뿐인 것이다. 아픈 지느러미를 흔들어가며 한쪽으로 쏠린 따스한 인간적 휴머니티와 그 생사의 슬픔이 서늘하고도 눈물겹다.
문태준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문예중앙'(1994)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누가울고간다] 등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Jan.18.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