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고재종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나 굵은 것이나 아예 실가지거나 우듬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
한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
대거나 휙휙 후리거나, 제 깜냥껏 한세상을 흔들거린다.
그 모든 것이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는 한 집의
주춧기둥 같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게 새삼 신기한 일.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한 새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칠흑 땅 속의 그 중 깊이 뻗은 실뿌
리의 흙살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듬지
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것 하
나라도 어떤 댓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가.
아,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아왔느니.
--------------------
그렇다.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아왔'다. 이 감나무 한 그루를 들여다 보라. 나뭇가지 하나라도 온통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다.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 두루 생존의 힘으로 당차게 견디게끔 하는 대자연의 힘, 이보다 더 가슴 뜨겁게 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고재종시인은 전남 담양출생. 198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및 다수. 신동엽창작기금,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보스톤코리아신문.2008년.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