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시가 있는 세상]
반전
홍일표
그림을 모시던 액자가 깨졌다
화랑 입구 계단으로 그림이 흘러내렸다
줄줄 흐르는 풍경
퍼 담을 수 없는 강물과 미루나무
오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그림을 맛있게 찍어먹는다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며 지나는 사람도 있다
풍경이 유리를 깨고 뛰쳐나와
뛰어논다, 유리조각이 와글와글 갈 길을 서두르고
맛있게도 얌얌, 옥죄던 넥타이를 풀어헤친 모가지
반짝이는 미루나무 이파리를 뜯어먹고
찰랑이는 강물을 두 손으로 퍼 마신다
무덤에서 빠져나와 살아 뛰던 생물들,
깨끗하게 그릇이 비워졌다
네모 반듯한 접시만 휑하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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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초현실의 세계로 잠입해보자. 액자 속 그림이 쏟아지자 환타지가 펼쳐진다. 물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간섭무늬를 이루며 상호 용해된다. 이 무한 상상의 향방은 예측불허의 이미지들과 혼합되고 채색되며 퍼포먼스를 펼친다. 누가 액자에 담긴 그림을 정물이라 말했던가. 다만 그들을 담아두었던 네모난 접시에 불과 했던 것을.
홍일표 시인은 1988년 심상신인상, 1992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안개, 그 사랑법><혼자 가는 길><살바도르 달리風의 낮달>, 산문집<죽사발 웃음, 밥사발 눈물><조선시대 인물 기행>등이 있다.
<신지혜.시인>
-[보스톤코리아신문]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