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무꽃 피다
마경덕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후다닥 무언가 뛰쳐나간다. 가슴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꽃이다. 까만 봉지 속이 환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무 한 개 꽃자루를 달고 있다. 베란다 구석에 뒹굴던 새득새득한 무. 구부정 처진 꽃대에 연보랏빛 꽃잎 달렸다. 참말 독하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꽃을 피웠다. 손에 얹힌 무, 몸집보다 가볍다. 척, 제 무게를 놔버리지 못하고 주저주저 망설인다. 봄이 말라붙은 무꼬랑지 쥐고 흔들어댄 모양이다. 창을 넘어와 봉다리를 풀고 무를 부추긴 모양이다.
눈을 뜨다 만 무꽃. 여기가 어디라고 덜컥, 꽃이 되었던가. 어미 살을 파먹고 꽃이 된 무꽃. 쪼그라진 젖을 물고 있는 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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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따뜻한 화두를 던지며 숲을 이루어 내내 출렁인다. 시들어 가는 무의 몸에서 대책 없이 눈을 뜬 무꽃. 그 무꽃은 어미 살을 파먹고 핀 것이다. 세상에 피어난 꽃이, 어디에도 없던 것이, 그 보이지 않았던 캄캄한 것이, 제 어미의 살을 파먹고 눈을 틔우고 환한 꽃을 한 송이 밀어 올려 피었던 것이다. 숨을 틔우는 일의 그 따스한 구근. 거기 무꽃의 뿌리가 비로소 뜨겁고 눈물겹게 만져진다. 우리 모두, 역시 누군가의 살을 찢고 여기 태어나지 않았던가.
마경덕 시인은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신발론>이 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Jun.08.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