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비둘기호
노향림(1942~)
몇 걸음 더 가고 싶은 비둘기호가
마지막으로 남원 옹정역에 닿는 날
날개 없는 비둘기들 사이에 나는
앉아 있었다 마음은 마냥 산줄기를
타고 넘어가 구른다.
기적 소리도 없이 굴러가는 낡은 쇠바퀴 소리 하나
붙들지 못했다 나를 붙드는 건
밤톨만큼씩 굴러 다니는 사투리였다.
장꾼들이 이고 지고 온 보퉁이마다
눈이 부은 잠 부족한 아침이 꽂혀 있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찬서리 묻은 하늘이 덮혀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적삼 아래
둥그런 젖무덤을 보인 아낙들이
제 키들을 낮추며 비둘기호에서 내린다.
졸업 사진 속 얼굴같은 새벽 하늘을
배경으로 맘껏 서성인다.
집찰구 밖으로 뚫린 역마당엔
옆구리가 다 터져나온 보퉁이들
나도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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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비둘기호를 타고 이 따뜻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라. 마지막 남원 옹정리역에서, 정감어린 사투리들이 그대 마음을 덥썩 움켜잡을 것이다. 비둘기호에서 내려지는 "옆구리가 다 터져나온 보퉁이들", 마음 속에 소중히 묻어둔 우리들의 고향도 바로 이런 가슴 찡한 옹정리 역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이 따스한 시가 12월의 추위를 골고루 어루만진다.
노향림 시인은 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 영문과 졸업. 197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k읍 기행] [눈이 오지 않는 나라]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이수문학상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Dec.14.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