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탑(塔)
원구식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한꺼번에 무너진다.
塔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不安하다.
당연히 무너져야 할 것이
가장 安定된 자세로 비바람에 千年을 견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것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不安하다.
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名分으로 탑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塔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塔에 새긴 詩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塔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塔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不安하고
무너져선 안 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不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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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우리 현대인의 정신적 코드를 예리하게 폭로한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무너져버릴 탑들, 아니, 한꺼번에 무너져서 낙망케 하는 탑들, 탑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한 오늘날이 되어버렸다. 현대인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불안한 그것의 위기적 실상을 이 시가 경고한다.
원구식 시인은 경기도 연천 출생.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마돈나를 위하여>등이 있으며, 월간 <현대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발행인이며,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2008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