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
김선우
무꾸라 했네 겨울밤 허리 길어 적막이 아니리로 울 넘어오면
무꾸 주까? 엄마나 할머니가 추임새처럼 무꾸를 말하였네
실팍하게 제대로 언 겨울 속살 맛이라면 그 후로도 동짓달 무
꾸 맛이 오래 제일이었네
학교에 다니면서 무꾸는 무우가 되었네 무우도 퍽 괜찮았네
무우-라고 발음할 때 컴컴한 땅속에 스미듯 배는 흰 빛
무우밭에 나가본 후 무우- 땅속으로 번지는 흰 메아리처럼
실한 몸통에서 능청하게 빠져나온 뿌리 한 마디 무우가 제격이
었네
무우라고 쓴 원고가 무가 되어 돌아왔네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
이라는데,
무우-라고 슬쩍 뿌리를 내려놔야 ‘무’도 살만 한 거지
그래야 그 생것이 비 오는 날이면 우우우 스미는 빗물을 따라 잔
뿌리 떨며 몸이 쏠리기도 한 흰 메아리인 줄 짐작이나 하지
무우밭 고랑 따라 저마다 둥그마한 흰 소 등 타고 가는 절집 한
채씩이라도 그렇잖은가
칠흑 같은 흙 속에 뚜벅뚜벅 박힌 희디흰 무우寺,
이쯤 되어야 메아리도 제 몸통을 타고 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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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무밭 언저리를 지나다 보면, 시퍼런 무청 아래 살짝 드러난 흰 무들. 그러나 한글맞춤법통일안에는 '무우'를 '무'라고 규정. 각 지방의 토속어와 사투리등을 정리하여 공용 표준어로 사용하게 함이겠으나 어쨌든 '무우'에서 '무'로 고착된 그 허전함이야 어찌 말로 다 하랴. 언어와 철자에도 그 음 율격과 됨됨이의 품격이 있는데 "무우-라고 슬쩍 뿌리를 내려놔야 '무'도 살만 한 거지" 백번 그렇지 않은가.
김선우 시인은 강원도 출생. 1996년[창작과 비평]으로 등단.시집으로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도화 아래 잠들다><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및 산문집 < 물 밑에 달이 열릴 때>가 있다. 현대문학상, 천병 병시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보스톤코리아신문]2008.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