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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울산신문] [시인이 읽어주는 詩] 신시혜 시인의 '밥'2019-08-2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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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11 02:23 | HIT : 39 | VOTE : 4
[시인이 읽어주는 詩] 신시혜 시인의 '밥'

밥    
                                                            신지혜 

밥은 먹었느냐 
사람에게 이처럼 따뜻한 말 또 있는가 
 
밥에도 온기와 냉기가 있다는 것 
밥은 먹었느냐 라는 말에 얼음장 풀리는 소리 
팍팍한 영혼에 끓어 넘치는 흰 밥물처럼 퍼지는 훈기 
 
배곯아 굶어죽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느 죽음보다도 가장 서럽고 처절하다는 거 
나 어릴 때 밥 굶어 하늘 노랗게 가물거릴 때 알았다 
오만한 권력과 완장 같은 명예도 아니고 오직 
누군가의 단 한 끼 따뜻한 밥 같은 사람 되어야 한다는 거

무엇보다 이 지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것은 
인두겁 쓴 강자가 약자의 밥그릇 무참히 빼앗아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은 둘 다 옳다 
목숨들에게 가장 신성한 의식인 
밥 먹기에 대해 누가 이렇다 할 운을 뗄 것인가 
 
공원 한 귀퉁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이에게도 
연못가 거닐다 생각난 듯 솟구치는 청둥오리에게도 
문득 새까만 눈 마주친 다람쥐에게도 나는 묻는다 
 
오늘 
밥들은 먹었느냐 

●신 지 혜 시인
서울 출생. 2000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200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밑줄'

[評] 밥은 우리 음식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주식이다. 곡물을 익히는 조리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밥은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음식이다. 우리 일상식의 특징은 주로 주식과 부식이 분리된 형식으로 반찬이 없으면 밥만 냉수에 말아 먹어도 되고,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한 사발의 밥을 먹을 수도 있다. 밥을 부식보다 훨씬 중히 여기는 풍습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식생활의 한 풍속이다.

 보온밥통이 없었던 어린 시절, 겨울철마다 출타하신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대비해 어머니는 아버지 밥그릇을 아랫목 담요 속에 묻어 놓고 밥이 식지 않도록 하셨다. 보온을 위해서는 최상의 방법이겠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안의 제일 어른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일러주시면서 아버지의 존엄성을 지켜 주셨다.

 근래에는 먹을거리 문화가 아주 다양해졌다. 외식문화가 발달되고 주거형태도 아파트 등으로 바뀌어서 밥상마저 식탁 문화에 밀렸다. 예전에는 아버지 밥상이 따로 차려졌는데 요즘은 식구들 모두 식탁에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다 보니 아버지의 자리는 자연 소외되고 아이들 중심으로 밀리다보니 자연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져가지 않나 싶다. 

 신지혜 시인의 '밥'에서도 그랬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모를 요즘 밥의 존재가 새삼 위태롭다. 쌀이 주식이던 시절에는 쌀이 귀해서 아우성이었지만 요즘은 쌀 소비량이 줄다보니 밥이란 존재는 언젠가 식탁에서 사라질 것만 같다. 함께 밥을 먹더라도 어른이 먼저 밥술을 뜨고 나면 다른 식구들이 밥을 먹던 시절이 아마득해지는 요즘이고 보면 밥이 사라지면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밥이 보약이라고 외쳐대는 세상에 밥이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모를 일이 되어 버렸지만 오늘도 밥은 드셨는지.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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