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기 교수의 [현대시] 해설
한국외대 교양학부[한국시]담당교수
시 오브제의 새로운 의미 추구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있다
신지혜
무색의 둥그런 선 안에 갇힌
물의 무게를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살 속에도 피가 흐르고 뼈가 있어
세상으로 닿는 길목, 씨 하나를 심는다
겹겹의 눈빛 사이로 만상이 스러지고
찬바람의 손바닥에 얻어맞아도 해체되지 않는
그 팽팽한 표면장력,
서릿발치는 하늘 몇 장이 젖은 몸 안으로 들고
둥글게 부풀어오른 정적이 잠시 숨이 멎는다
그 어느날,
쩍쩍 입 마른 벌판의 살갗 속으로
지분지분 스며들면서 천지간
푸르러지는 여름 江,
마침내 실로폰 소리로 튕겨 오르는
경쾌한 웃음소리가
꼬깃꼬깃한 시간의 주름살을 팽팽히 다려놓는다
나도 그렇게 작은 물방울 하나로
기스락 끝에 매달려있다
투명한 씨방 속, 무수한 뿌리를 늘인다
둥그런 씨앗 하나가 시방 탱탱히 영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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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필자는 <현대시는 메타포이다>라는 것을 강조해 오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시는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의 오브제(objet/프, 美를 표현하는 소재로서의 대상)를 능수능란한 메타포로써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전달시킬 때 그 시인의 역량은 높이 평가될 것이다. 그것이 곧 유능한 시인의 인프라(infrastructure/기초구조) 구축 작업이다. 시를 잘 쓴다는 것은 그 시인이 시어(詩語)에 억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어를 지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신지혜의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있다’는 빛나는 물상(物象)의 시 이미지의 참신한 전개이다. “그 어느날/쩍쩍 입 마른 벌판의 살갗 속으로/지분지분 스며들면서 천지간/푸르러지는 여름 江/마침내 실로폰 소리로 튕겨 오르는/경쾌한 웃음소리가/꼬깃꼬깃한 시간의 주름살을 팽팽히 다려놓는다”(제3연)와 같이 시의 탄생이란 새로운 은유에 의하여서만 가능하다. 종래의 시작법이나 시언어로서는 도저히 설득시킬 수 없는 메타포로서 독자에게 뿌듯한 충족감을 가슴 그득 안겨 주어야 한다. 그것은 시인의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창작 자세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참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온 세상에 당당하게 보여주는 일이 시인에게 주어진 책무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시(非詩)를 반복하는 흔한 처사는 이제 너무 지루하다. 그러기에 시인은 미래를 창조적으로 투시하는 비스타스(vistas)의 시작법을 과감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견지에서도 신지혜의 시는 근래 보기 드문 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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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교수
일본 센슈우대학 대학원 국문학과(시문학) 문학박사. 한국외대 교양학부[한국시]담당교수(현재). 한국현대시문학연구소 소장. 왕인문화협회 회장. 1959년[현대문학] 박두진선생 추천 시 추천완료, 1959년[서울신문]신춘문예(서정주,박목월,김광섭 선생 심사)로, 시[해바라기]당선.
[월탄문학상], [한국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