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시인에 대한 전기적 사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 출신으로 미 동부에 거주한다는 것, 2002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고 2007년 5월 첫 시집 『밑줄』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나 SNS를 통해서 시인의 소식을 가끔 듣곤 한다. 2007년 첫 시집을 내고 13년 만인 2020년 9월 두 번째 시집 『토네이도』를 출간했다. 시인은 굵직한 문학상 몇 개를 수상했고 그 탁월한 시적 성취로 국내 시단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세상엔 수많은 시인이 있고 개성도 다양하여 시를 읽을 때마다 예상하지 못한 시인들의 탁월한 작품성, 그 개성적 표현에 감동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탁월한 시인에게서 오는 언어의 향기, 그것은 종교적 영감을 받는 것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다. 나는 시를 읽을 때 때로는윤리로 때로는 종교로 때로는 예술로 읽는다. 시는 그냥 일반 언어가 아니다. 종교적 깨달음이 전해져 오고, 영혼을 울리는 전율이 파도쳐 오고 일상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생의 비의가 모습을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는 그만 그 시적 언어에 중독되어 평생을 시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시의 사명이고 효능이며 예술성일 것이다. 오늘은 신지혜 시인의 첫 시집 『밑줄』에서 두 편, 두 번째 시집 『토네이도』에서 두 편을 함께 읽으며 시인의 시정에 젖어보기로 한다. 긴 설명이 종종 독자의 감상을 방해하는 일도 발생한다. 독자 스스로 천천히 읽으며 언어의 미감을 느껴보고 나직이 내면으로 울려오는 시상의 흐름을 감지해 보기 바란다.
밑줄
바지랑대 높이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 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제 1시집 『밑줄』 (2007)에서
시 <밑줄>은 상당히 시각 이미지의 시이다. 조용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면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훌륭한 시 읽기가 된다. 빨랫줄을 보고 이만한 시상을 끄집어내는 시인의 상상력도 대단하거니와 고전적인 이미지의 창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를 읽고 우리는 금세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빨랫줄이 고향을 환기시키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불러다주는 사물이다. 내용은 다소 철학적이고 종교적이지만 그 소재는 소박한 전통 생활방식에 닿아 있어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죽은 女歌手의 노래
이제 그 여가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득한 그곳에서 몸은 버리고
목소리만 젖어왔습니다 얇게 압축된
가벼운 디스크 한 장 속에 눌린 그녀의 목소리엔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魔力이 아직 살아있어,
무대랑, 마이크, 물소리 같은 조명과 음향
유적처럼 그대로 보존돼 있는 그 신전,
지금, 어디쯤 존재하는지 나는
사뭇 궁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난 너만을, 너만을 원하네
아직도 너에게 넘치는 사랑 부어주려 하네 워워워――
노래는 시간의 허방처럼 깊고
흑단의 긴 생머리 찰랑 찰랑이던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윤기로 넘실 넘실거렸습니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듣기 위해 내 안으로 귀를 말아 넣습니다
가는 혈관을 따라 번져가는 힘센 사랑이
내 휴식의 텅 빈 활선을 따라 번져갑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 번 입력된 그녀의 곡조는 지워지지 않은 채
내 구석구석을 돌아 문득문득
찢겨진 내 생각 밖으로 흘러나와 나를 물들이고
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녀의 회전을
좀처럼 멈출 수 없습니다
-제 1시집 『밑줄』 (2007)에서
죽은 여가수를 생각하며 시인이 발산하는 언어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담론이 들어 있고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각성이 있고 어제와 오늘에 대한 시간의 성찰이 있다. 이미 죽은 가수가 지금 여전히 존재하고 예전에 불렀던 노래가 오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상황, 그것은 철학적 담론이고 종교적 영역이 되기도 한다.
여가수의 노래가 시의 오브제로 제시되었지만 여기서 ‘노래’는 모든 예술을 대신하고 ‘여가수’는 모든 예술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죽은 여가수의 노래를 듣는 화자는 언제 또 죽은 시인의 시를 읽고 죽은 화가의 그림 앞에서 오래 상념에 젖어 있게 될지 모른다. 이역만리 미국에 거주하며 이런 시상을 다듬어 고국의 독자에게 내놓는 시인에게 감동으로 찬사를 대신할 따름이다.
다음은 두 번째 시집 『토네이도』에서 두 편 골라보았다. 시는 여타의 생활문과는 달리 심안(Inward Eye)으로 읽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한 번, 두 번 읽고 다시 또 읽으며 시의 흐름에 조용히 나를 맡겨 보자.
토네이도
대륙을 강타한 토네이도 너는 처음에 무화과나무 밑에서 부스스, 가느다란 실눈을 떴지 고요해서 숨이 막혀요 너는 이따금씩 울부짖었지 너는 마침내 홀로이 길을 떠났지 너의 가느다란 휘파람으로 들꽃의 울음 잠재워주곤 했지 나 자신이 누구야, 대체 누구란 말이야, 너는 외로움 씨눈 하나 빚었지 너는 천천히 스텝을 밟게 되었지 누군가 너를 상승시켰지 점점 격렬해졌지 벌판 들어 올리고 내려놓으며 바다 철버덕 내리치며 빙글빙글 도는 동안, 휘말리는 대지, 바다, 허공이 나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었지 네 몸이 점점 부풀어 올랐지 루핑들이, 입간판들이, 너의 손을 잡고 달려주었지
너도 처음엔 아주 미세한 숨결이었어
무화과나무 그늘 밑에서 겨우 부스스 눈을 떴어
처음부터 토네이도로 태어나진 않았어
토네이도는 캔사스 주 들판을 송두리째 뒤엎고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할딱이는 가느다란 숨결은 나뭇잎 한 장 뒤집을 힘도 없이 어느 오후 공기의 대열 속에 틀어박혀 고요한 공기 눈알이 되었다 마치 한 사람의 격렬한 인생처럼, 치열하게 광란하던 한 시절만이 벌판의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