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시인 보도클리핑*

제목[대구신문]시가 있는 창-벽의 침묵.2019-08-23 22:00
작성자
2007·06·02 13:07 | HIT : 2,326 | VOTE : 234

벽의 침묵

신 지 혜


한낮의 햇빛이 표본처럼 납작하게
눌린 채 벽에 걸려있다.

하얗게 박제된 그 언젠가의 시간이,
나프탈렌속에 보존되었던 마른
꽃잎처럼 바스락거린다.

오려붙인 듯 선명한 한때의 풍경들이
벽속에 꼼꼼히 저장된다.

그 벽.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빛도 없다.

슬픔이 고여 응고된 벽의 입안에서
쑥쑥 자라올라 범람하는 소리들, 빛들,
세상의 어둠들이, 한밤중이면 무거운
침묵에 들어 스스로 환해진다.

이 안과 밖의 소리, 서로 섞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벽들은 더 단단해진다.


*뉴욕 거주.「New Millennium Poet」선정 시인.

<해설>

- 신지혜시인의 시는 아주 사유적이다. '벽'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그야말로 치밀하다. 단절된 벽을 하나의 공간설정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다름아닌 무언 즉 침묵의 세계다.

그러나 시인은 인식하고 있다. '응고된 벽의 입안에서 쑥쑥 자라올라 범람하는 소리들. 빛들. 세상의 어둠들이. 한밤중이면 무거운 침묵에 들어 스스로 환해진다'고 역설적 표현하고 있다. 바로 시의 핵심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벽만이 그러하겠는가. 인간세상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 안과 밖, 그리고 존재들의 실체와 허상들이 그렇게 존재하며 밝음과 어둠 열림과 닫힘, 소리와 침묵을 차단하며 양립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입력시간 : 2005-02-17 18:33:58>

#대구신문# 벽의 침묵-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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