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관문을 밀고 나가자, 아득한 골목 저편이 아코디언처럼 접혔네 저편 우주 끝에 가 닿는 결 무늬, 다시 밀려와 내 몸 속을 통과했네 내가 휘적휘적 길 걸어갈 때, 몇 겹의 공기가 푸드득 찢겨 너풀거렸네 이따금씩, 휘둥그레진 그 눈알 속에 수천의 내 얼굴 촘촘히 박혀 있었네 문득문득 저편, 파스텔의 전생들이 흘깃흘깃 나를 바라다보네
타박타박 걷다가 뒤돌아보면 공기 소용돌이가 나를 따라오네 어쩌다 올이 풀린 공기알이나 찌그러진 공기 한 알도 누군가 재빨리 수선하네 노오란 햇살의 실밥들이 자욱이 흩날리네 길 앞, 저쪽이 접혔다 펴질 때마다 우주 건반이 루루 경쾌하네 나는 거리의 악사처럼 길을 가슴에 껴안고 연주하네
-시집 〈밑줄〉(천년의시작)에서
신지혜
서울 출생. 2002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현재 〈시와 뉴욕〉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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