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제목신지혜 시집 [토네이도]읽기, 아름다운 가문, 새들의 지구생활, 풍경을 치다-----한석호 시인2021-02-17 14:24:18
작성자
신지혜 시집 『토네이도』 읽기
                                               -한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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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섬기라면서도 정작 신을 우습게 여기고 탐욕의 도구로 이용하는 인간들, 만물의 영장이라며 세상 모두를 발아래로 취급하면서도 하는 짓은 미물만도 못한 짓을 예사로이 하는 인간들, 과연 세상에서 인간만이 고귀하며 대단한 존재일까? 세상에 오는 생명 중 그 어떤 것도 인간만큼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생명은 그 자체로 독자적이고 온전한 것이어서, 탄생 자체가 고유한 격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해서 인간만이 귀하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생이란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것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해주는 타자요 거울이며, 그들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서는 사람살이가 돌아가지도 않고, 제대로 표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늘 눈과 귀와 발을 세상 쪽으로 열어두고 살아야 하고, 세상이 모두 내 소유라는 오만과 탐욕에서 내려서 있어야 한다. 깨어나서 잠들기 전까지의 모든 순간들은 만물과의 소통이자 나와의 대면 시간이다. ‘머물지 않는 마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려 노력하다보면 삶이 더 윤택해지고 따뜻해지는 것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다’고 성현들은 말한다. 하지만 누구나가 다 그런 삶을 살고 실천할 수는 없다. 정착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이후의, 그 오랜 시간 누려온 평온과 안전을 뒤엎고 뛰어나가 무위자연의 삶을 살기란 쉽지도 않고, 그런 마음자체를 꺼내는 것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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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가문에 프라이드를 갖습니다
아버지는 중앙시장에서 리어카 끌며
야채 팔아 나를 키웠습니다
타인 속이는 걸 가장 두려워했던 아버지는
마진 없이 장사하였으며
저녁이면 파 썩는 냄새 막걸리 냄새로 코를 쥐었으나
전대 속에선 늘 정직한 노동의 대가가 절랑거렸습니다
어머니는 경동시장에서 옥수수 떼어다 삶아 머리에 이고
가가호호 골목골목 누볐습니다
목숨 내놓고라도 절대 어둠과 결탁하거나 비굴하지 않아
자존심 강한 어머니는 늘 가난이 괜찮다 하시며
밤새도록 끙끙 앓는 소리를 냈습니다
할아버지는 외진 골목어귀 굽은 허리로 온종일
구두 수선했습니다
양심과 정직은 돈이나 명예와도 바꿀 수 없다고
성품이 늘 대쪽같이 꼿꼿하고 강직한 할아버지 그렇게
평생 세상 가난 한 잎 한 잎 모아, 가훈처럼 마루 밑에
돈 항아리 묻어놓고 훌훌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전국 팔도 선남선녀 짝지어주고
사람으로 왔으니 꼭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라고
서로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안 된다고
꼭 한 말씀씩 꼭꼭 쥐어주고 옷이나 쌀 받아왔습니다
이 분들 모두 자기 생 최선 다했으며
타인 가슴에 못 치는 일 없이 선하게 사셨습니다
경전 읽은 적 단 한 번도 없으나
이 세상 팔만대장경 한복판 정도를 뚜벅뚜벅
걸어가셨습니다
나 이분들 닦아놓은 토대 위 태어나
단 한 번도 내 조상님들 욕되게 한 적 없습니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늘
내 든든한 후원자 되시며 나를 프라이드로 알고
계신 분들이십니다
내 가문은 참말 아름다운 가문입니다
「아름다운 가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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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물론이고 문화까지 다른 타국에서, 태어난 곳의 언어와 정서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어렵고도 고단한 길이다. 그렇게 쓴 글을 발표하고 읽게 할 대상이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고국의 독자들이라면, 더더욱 구도의 삶을 사는 일 못지않게 허공을 경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태평양 건너 먼 곳 뉴욕에 그런 삶을 사는 시인 신지혜가 있다. 뿌리도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알고 있는 시인은 자신의 가계를 시의 언어로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뿌리가 견고하고 정직한 곳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록 힘들게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정직을 져버린 적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자신의 뿌리를 속이는 것은 기본이고, 성형으로 얼굴을 바꾸고 개명한 뒤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까닭에 한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얼굴을 정밀하게 그려낸 위의 시「아름다운 가문」은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맑고 단단한 솔바람의 향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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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새들이
창밖에서 시끌벅적했다 전깃줄에 모여 앉은
새들의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가만 들어보니, 평소 종교를 믿지 않는 새 한 마리가
큰 길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새들은, 그 새가 과연 새들의 천국에 갈 것인지 못 갈 것인지
왈가왈부하고 있었다
그가 겨드랑이 헐도록 근면 성실하였으므로
새들의 자비로운 신께선 그를
천국에 불러 새들의 천사라도 시켜줄 것이라 하였고
다른 새의 의견은 그가 신을 결코 믿지 않았으므로
그를 끓는 유황불에 내던져버릴 것이라 했다
또 다른 새의 의견은 달랐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런 신은 신도 아니지,
그렇다면 신을 끌어내리고
새를 가장 잘 이해하는 신다운 신을 앉혀야 하고 말고,
라고 격분했다
아까부터 앞집 지붕 위에 앉아있는 부부 새는
교육문제로 쟁론했다
애가 누굴 닮아 이기적이고 예의가 없나,
나이 먹으면 좀 나아질까, 아무리 옳은 소리도
부모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그게 다 어릴 때부터 야단치며 훈육하지 않은 당신 탓이지, 서로 책임 미루며 언쟁하고 있었다
오크나무 가지 위에 앉은 늙은 어미 새는,
하나밖에 없는 새끼 새가
도무지 하늘이 답답하여 숨 막힌다고,
기필코 하늘 지붕 다 거둬버리고 돌아오겠노라
호언장담한 채 가출한 지 일주일이 넘었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고,
거의 식음 전폐하며 초점 없이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지구 생활하기에 너희들도 참 고생 많구나, 만일
새들의 신께서 외면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응답할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나 그들 위로해주었다
「새들의 지구생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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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시선을 빌려 제 각각인 인간의 잣대를 들여다 본 솔직하고 따끔한 시, 마치 현실의 종교인들이 하는 대화를 옮겨 적듯 또렷이 직시하여서 불편한 이들도 생겨날 것 같다. 굳이 니체를 빌려 말하지 않더라도, 신앙인의 삶이 비 신앙인의 삶보다 더 우월하고 낫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 맹목적으로 신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비 신앙인의 삶이 훨씬 가치 있고 보람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신을 부르짖기만 하고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삶이 충만해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무슨 길을 걷던 충만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은 기실은 거짓과 위선이 아닌 참된 삶을 살라는 것이지 않은가.
일찍이 신을 도입해온 것도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높이에 대한 갈급을 해소하기 위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갈급함을 벗어나지 못했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타락의 길을 걷어내겠다고 날마다 다짐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 이는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을 신격화하여 포장하고 위장하여, 정치나 통치 혹은 밥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해오고 있기 때문이요, 자신의 두려움을 희석시킬 기제로써 신을 붙들어두고 있기 때문이니, 인간사회에서 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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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코노 산속 어느 허름한 집
처마 끝 매달린 풍경 하나가 요란합니다
어디서 온 바람인지, 전할 말 있다는 듯 뎅뎅 종을 칩니다
어찌나 그 음의 소릿결 파문
허공에
오래오래 번지는지
박차 오르는 풀숲의 새 떼도 소릿결 따라 밀려가며 번집니다
빽빽한 골짜기 나무들 일제히 한쪽으로 고개 숙이고
머리칼 정갈하게 빗겨 번지는데
바위틈 그늘 밑 잡초들도 귓바퀴 둥글게 열어 번지며
꽃들은 나무에게
나무들은 달에게
달은 별들에게 천지사방 소릿결 전합니다
산 아래 아득히 납작 엎드린 마을 지붕들
힘들지, 일일이 머리 쓰다듬으며
따뜻한 파문이 번집니다
먼저 출발한 둥근 파문의 고리 위로 뒤에 출발한 둥근 고리가 정연하게 뒤 따릅니다 어느 고리도 앞서가나 겹쳐지지 않고 제각기 도를 지킵니다
저편 세상 벽을 치고 돌아온 고리들이
다시 어미 종 향해 한 줄 두 줄 되돌아옵니다
종은 제가 낳았던 소리를 다시 품에 받아 안습니다
나 여기 살며 무심코 툭툭 내놓은 언행의 파문,
천지사방 한 바퀴 두루 돌아 내게 다시 귀환하는 것
풍경소리 듣고 깨닫습니다
삼라만상이 함께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
나 비로소 되새깁니다
「풍경을 치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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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치환하거나,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시적 장치는 그리 간단치도 않고 쉽지도 않다. 언어의 결과 숨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고 틀어지는 게 이미지의 변환이고 치환이기 때문에 누구나 시도는 하려 들면서도 성공을 확신하지는 못한다. 헌데 위의 시는 단순히 이미지의 치환이나 변환을 넘어, 시적 자아가 그 풍경들을 끌고 아스라한 우주까지 여행하고 돌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명상적 풍경까지 그려내고 있으니 수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시인은 끝없는 방랑의 얼굴로 사는 전형적 유형의 인류다. 빈 땅에 터를 닦는 건축가가 오롯한 천년의 집을 꿈꾸고는 집이 세워지면 다시 떠나가듯,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끝없이 허공의 길을 닦는 삶을 살아간다. 이는 일부러 일반대중과 구별되려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 DNA가 시인을 그리 끌고 가는 것이어서, 자발적 유랑이자 방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지혜 또한 태생적 방랑의 DNA가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편들을 보면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 안온한 삶보다는, 세상 곳곳을 읽고 그것들과 교감하는 삶을 살고 있음이 녹아 있다. 하지만 모든 시인이 그렇게 살아가지는 않는다. 뛰쳐나가는 순간 외로운 길 위의 삶이 기다리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하게 말빚을 주고받으며 어울려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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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높은 완성도에 이르려면 자기성찰과 자기정화의 과정이 필수로 요구된다. 그런 과정도 없이 대충 그림 맞추기로 써내고 묶어낸 시집이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 자아의 탐구와 도전은 양심 속으로 얼마나 깊이 자맥질 하는 가에서 출발하고, 그 선상에서 반복하여 더 높고 깊이 도약하는 가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로 삶은 깊어지거나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시 또한 그와 같아서 고통과 고독은 기본이고, 인내와 채찍질이 동반되지 않으면 태어날 수가 없는 생물이기도 하다. 그런 시간을 지나서 내놓아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시, 한권의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은 인쇄 직전까지 긴장과 피를 말리는 시간의 무대 위를 오르내리며 입술을 앙다문다.
필자의 눈에 들어온 몇 편의 시를 통해 신지혜 시인의 시집『토네이도』를 읽었다. 시집을 받고도 꽤 오래 책을 들춰볼 시간이 없었기도 하고, 남의 시집을 리뷰하지 않기로 유명한 고약한 성정이어서 리뷰가 많이 늦었다. 시집 한 권의 해설로 읽은 것이 아니니 전체를 조망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몇 편의 시를 통해서도 그의 역량과 시적 자아를 헤아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신지혜의 시는 시야가 갇혀 있지 않고 멀고 깊은 곳까지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고 읽힌다. 그럴싸한 흉내를 내는 시인은 많지만 제대로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된 시인은 드문데, 신지혜의 사유는 충분히 깊어 보인다. 시집의 출간을 축하하며, 다음 시집에서는 새로운 시적 무늬와 풍경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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