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제목[현대시학] 2021, 1-2월호 시집의 0도,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유량과 멈춤의 간주곡- 신지혜 시집 [토네이도]-김혜천 시인2021-02-17 15: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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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간 짜라투스트라


신지혜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권력의 시종들아,

나는 이 세상 공장이 찍어낸 듯 세뇌된 인간이 되지 못했다

내가 가진 재산은 오직 자유와 유랑,

 

나는 누구의, 무엇의 끈에도 묶이거나 얽매이지 않았다

하물며 신의 으름장에도 눈 한번 깜박하지 않았으며

늘 내 의지의 파장대로 오직 배포로 살았거늘

 

그래 나는 이 세상의 환에도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았으며

나마저도 고정된 나라 믿지 않았다

내가 내 것이라고 시인한 적 없으며

가라 또는 머물라 해도 나는 내 의지대로 떠돌았다

이 지구에서 배운 양식대로 살지 않았다고 누가 내게 화살 겨누겠는가

 

대중들이여, 홀로인 내게 대체 뭐라고 하는 건가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누구와도 결탁하거나 공조하지 않았다

뒷골목 암거래로 내 양심과 영혼을 팔아치우지 않았다

나는 늘 무엇에 구속된 적도 없고 해방된 적도 없거늘

아무도 내게 세상의 수갑을 채우거나 간섭할 수 없다

누구에게 엎드려 칭송하거나, 세계, 국가, 단체에 맹종하여 서명한 적 없다

나는 오직 찰나마다 알아차림하고 지내왔으니

나는 나를 어디에도 빼앗기지 않았다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다만 살아 숨쉬는 순간마다 들숨 날숨 누리고 있을 뿐

나는 늘 여럿인 듯 당당한 혼자였다

나는 통속적인 누더기 사상과 굴종일 뿐인 객설의 외투를 벗어 던졌다

 

나는 스스로 돌보는 자

 

맨해튼 빌딩 숲을 유유히 걸어가는 짜라투스트라는

빙그레 웃으며, 야유 퍼붓는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Friedrich Nietzsche) .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ㅡ니체(Fricdrich Nictzsche) 저
.
                             ㅡ「도시로 간 짜라투스트라」 전문
.
  신지혜 시인은 우주적 시인이라 불리운다. 그는 스케일에서 뿐만 아니라 우주적 사고를 하는 시인이다. 우주적 사고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 중심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순환 고리에 얽혀 있는 너와 나, 뿐만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는 불이不二사상과 일치한다.
  신지혜의 두 번째 시집 『토네이도』는 근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자의 유랑이다. 우주를 물방울 한 알에 담아내기도 하고 (「물방울 판타지」) 해체 (「물방울 휴거」) 하기도 하면서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연민과 순환의 고리(「우주 에너지」) 등 깊고 넓고 높은 사유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그가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은 온갖 부조리가 넘쳐나지만(「우주 모둠탕이 펄펄 끓는다」) 현상에 대한 비판과 예리한 통찰을 통하여 삶의 방식을 설정하고 자아를 찾아 떠났다 멈추었다(「지구인 명상」)를 반복한다
  참 자아를 향한 끝없는 유랑을 통하여 인식된 시인의 삶의 방식을 마지막에 수록된 다소 긴 한 편의 시로서 만나본다.
  19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물질문명이 더이상 인간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럽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양사상의 몰입, 인간의 참다운 삶을 위하여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담론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쓰인, 바람처럼 자유롭고 규격화된 가치를 거부하는 철학자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를 현대에 소환한 시인은 대상을 자기화(동일성)하는 기법으로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내가 가진 재산은 오직 자유와 유랑”이라고 말한다. 이 진술은 시인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어떠한 ”권력”이나 인위적으로 형성된 ”공장이 찍어낸듯“한 어떠한 담론에 ”세뇌“ 되지 않고 어떠한 ”굴레”에도 묶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신의 으름장에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고 언술하여 신의 존재 자체마저 구속이라 여기는 자유 의지를 보여준다.
  무한 자아 아트만을 명상하는 시인 명상의 과정에 나타나는 “환”을 경험하는데 환幻은 명상체계의 하나로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다. 일종의 속임수인데 화자는 어떠한 “환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고” “의지의 파장”을 밀고 나간다. “오직 찰나마다”의 “알아차림”으로 자아를 성찰하는 사람은 “나를 어디에도 빼앗기지” 않는다.
  “나마저도 고정된 나라고 믿지 않았다”에서 시인의 사고가 싯타르타의 무아 사상에 맞닿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아無我는 범어로는 아나트만(Anatman) 팔리어로는 아나딴(Anattan)으로 이는 싯타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뒤 최초로 설파한 가르침인 무아無我 즉 공空은 싯타르타의 핵심 사상으로 모든 실체는 변화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나’라는 실체마저도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의 세계는 끝없는 순환의 세계이므로 허무의 공空이 아니라 생명으로 꽉 찬 공空 충만의 공空이다. ‘나’라는 집착에서마저 벗어나 공의 세계의 합일되는 것이 구도자의 최종 도착지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얼룩소 거리를 걸으며 삶의 새로운 가치를 설하였듯 “통속적인 누더기 사상과” “굴종뿐인 객설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시인은 “맨하탄 빌딩 숲을 유유히 걸어가”면서 이 혼란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혜를 궁구한다.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나는 스스로 돌보는 자“라고 대 자유를 선언하는 시인의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유랑과 멈춤의 간주곡을 들으며 무채색 그리움이라는 부제를 단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유랑자여 이제
  ‘소나무 같이 장엄한 자기를’ 만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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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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