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제목기억할 만한 변신의 순간-이장욱 시인. 신지혜 시인의 신작소시집 이렇게 읽었다2019-07-17 04: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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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3 00:14 | HIT : 4,002 | VOTE : 547

 

-<현대시학> 3월호 신지혜 시인의 '신작소시집 이렇게 읽었다-
[우담바라 후드득, 피어나다]. 외 8편



기억할 만한 변신의 순간




이장욱(시인)







우주

아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우주>라는 단어가 나오는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아니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대개 이 단어에는 실재하는 우주를 관념적으로 규정해 버리려는 이상한 욕망이 개입해 있다.이 욕망은 禪도 經도 아닌 폐쇄적 깨달음의 미학을 재생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한 일이지만,<우주>라는 단어는 우주의 혼돈과 우주의 역동성, 그리고 우주의 구체성을 쉽게 삭제해 버린다.

이상한 우주

내가 읽은 그녀의 시9편에는<우주>라는 단어가 7번 나온다.<시인의 詩話>까지 합하면11회다.<우담바라>,<수천 하늘>,<무상 1칼파>(劫이라는 뜻),<空>같은 어휘들도<우주>라는 단어와 같은 계열에 있다.실제로 이 시편들은 일종의<시적 우주론>이라고 불릴 만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우담바라 후드득, 피어나다], [샬레 속 우주를 흔들다], [무상 1칼파를 잠행하다]같은 시들은 제목 자체가 그러하고,<시간의 쾌속정>과 <생의 허깨비>와 <공중 히말라야>에 대한 다른 시편들도 유사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다시 개인적인 취향대로라면, 그녀의 시편들은 내게 별다른 시적 호소력이 없어야 했다. 나는 약간 멍한 자세로 시를 읽다가, 생각난 듯 다른 책을 집어들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읽을 수록 좀 이상하다. 그녀의 시편들은, 내 선입관을 조금씩 비껴가면서, 뭔가 독특하고 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게 뭘까?지금부터 내가 살필 것은 그 <묘한>지점들이다.

묘사

대개 <우주적인 시>들이 의지하는 것은 관념적 진술이다. 산이나 하늘 같은 구체적 어휘들이 나오긴 하겠지만, 대개 그 산과 하늘은 실재하는 산과 하늘이 아니라 우주적 정신을 대변하는 산과 하늘이다. 그런데 그녀의 시편들을 지탱하는 힘은 이런 진술과는 다른 데서 나오는 것 같다. 그것은 밀도 높은 묘사이다.묘사가 강한 우주론이라니. 이건 좀 묘하다.

붉은 놀에 온몸 드러낸 바위들이, 잠시 허리를 폈다가 다시 절한다 붉은 전갈이 살고 있는 저 허공의 집 속에도 이제 꽃밭 켜는지 새 발자국 바이올렛꽃 하르르, 돋아 올랐다. 언제 담겨졌는지 적색 편운들, 서둘러 세간을 건너 환속한다 늙은 바위들이 어둠 속 좌정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헤비메탈 켜던 바람들 늙은 바위곁에 숨결 고르며 둘러앉는다 허공문이 일제히 열리는지, 푸른 게송 뿔뿔 흩날리기 시작한다 일순 바위 얼굴들 서늘한 사마디 든다 녹슨 시계바늘 움직여 무상 1칼파 휘리릭, 찰나 한 눈금 건너간다 노장들 바위몸 들고 흔적없이 잠행한다

어둑한 그랜드캐년,
사라진 바위들 아마도 여기쯤이었을까, 어두움 문고리잡고 내가 우두망찰 섰다 어디 있는가 당신들, 저 번개의 틈새에 접힌 내 찰나가 감감했다
-[무상1칼파를 잠행하다]전문


이 시의 1연은 묘사의 진술의 경계에 있다. 그랜드캐년의 바위들에 대한 이 묘사적 진술, 혹은 진술적 묘사는 세밀하고 정교하며 어딘지 집요하기까지 하다. 형용이 많은 듯 하지만, 그 형용들의 마디마디를 잇는 생각과 느낌의 고리들은 지극히 단단하다. 확실히 이런 밀도는 시적 파워가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노을에서 바위로, 바위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구름으로, 다시 바위와 바람으로, 그리고 끝내 어둠 속으로. 이 시적 흐름 속에서 화자는 바라보는 자로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문득
잠이 깬 한밤중, 사방이 고요했다
세상이 입을 잠근 채 잠겨있는 그 늪에
가만 귀를 대본다 격렬한 고요의 수런거림
(중략)
가만 들여다보니, 누군가 어둠을 여닫으며
두근두근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까만 염소털을 휘날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굽은 골목길이 혼자 급커브를 돌고 있었다 명상에 들던
노오란 달이 허공의 언덕 위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때, 투 툭! 공기알 씨방이 터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숨 죽였던 새벽의 우담바라 앞다투어
후드득, 피어올랐다 시간의 몸 튿어져 너풀거렸다
-[우담바라 후드득, 피어나다]부분

거미가 물레를 돌린다 둥글넓적한 다각형 원판을 짜서 공중에 건다 이쯤이면 되겠어, 그 정교한 다각형 체판에 걸려든 하늘이 마알갛게 숨결 걸러진다 풍경 여러 폭도 모두 빠져나간다 그러자 숨어 지켜보던 핏발선 그의 눈알에 굼뜬 고요 한 마리 어슬렁, 걸려든다

내가 물레를 돌린다 정성껏 다각형의 원판을 짜서 공중에 건다 침묵 위에 나를 장착하고 핏발 세운다 늘 나보다 민첩한 세상과 수천 하늘은 재빨리 빠져나가 버렸으므로 단 한번도 그들 과녁을 뚫은 적 없다 드디어 고요 한 마리 나타나자 내가 팽팽히 날아가 박힌다 그 푸른 독에 온몸 묻고 있으면, 내 안팎도 없이 잠잠해진다
-[고요하다]전문

앞의 시에서, 바람과 골목과 달에 대한 매력적인 묘사가 없었다면 우담바라가 피어오르는 절정의 장면은 무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의 시에서, 거미줄-물레-다각형 원판-거미줄을 빠져나간 풍경들을 잇는 표현의 고리들이 없었다면, 고요라든가 안팎 없이 잠잠해진 나 같은 이 시의 <결론>들은 설득력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집요한 집중력이라고 할 만한 이 묘사력은, 쉽게 쓰여지는 관념어들을 피해가면서 힘겹게, 조금씩, 시적 고요의 영토에 접근해간다.

순간의 매혹

하지만 그녀의 시편들이 점하고 있는 독특한 지점은 문체 차원의 설명으로는 온전히 조명되지 않는다. 대체 이 집요한 묘사들이 가닿는 곳은 어디인가?거꾸로, 이 묘사의 힘은 어디에서 발원하는가? 무엇보다도 그녀의 시편들이 미세한<순간>을 포착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이 아홉 편의 시에서 그녀의 영원이란 언제나 순간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녀의 언어들이 영원이라는 이상한 블랙홀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 언어들이<순간>에 대한 매혹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성들이 다이나믹한 턴테이블처럼 돈다/말간 공명으로 몸 부딪히며 잘게 깨진다/서슬 퍼런 맹독성 개스들 다시 뭉쳐지고 있었다/푸르고 당찬 꿈들의 샬레속,/내 우주 하나 힘껏 솟구쳐 올랐다
-[샬레 속 우주를 흔들다]부분

사라진 바위들 아마도 여기쯤이었을까, 어두움 문고리잡고 내가 우두망찰 섰다 어디 있는가 당신들, 저 번개의 틈새에 접힌 내 찰나가 감감했다
-[무상1칼파를 잠행하다]부분

먼저 단전에 숨 한번 멈추고/여백이 꽉 찬 흰 화선지위에/듬뿍 묻힌 먹물을 꾸욱, 누르는 듯 싶더니/흰 우주 적막을 가늘게 찢으며/꽁꽁 숨었던 난초 잎 하나 툭, 트인다/드디어 난초 잎 하나 고개를 든다/얇은 화선지 음지에서/서로 엉키고 설켰던 구부러진 사족들,/날렵하게 이리저리 삐쳐 오른다//천길 절벽에이르러서는/일직선의 팽팽한 몸이 망설임도 없이/난창, 휜다 품 넓은/대기가 단숨에 넙죽 받아 안는다/천지사방,/수군수군 봄바람 일어선다/속울음 터지고 말이 터진다/참았던 자폐가 꽃망을 단다/제 생의 암시와 여백 한 장을/철철 들었다 놓았다 한다//집 한 채가 숙연히 선다
-[立春]전문

꽃이 피는 순간([우담바라 후드득, 피어나다], 실험용기 안에서 미생물이 발생하는 순간([샬레 속 우주를 흔들다]),무상 1칼파와 찰나가 부딪히는 순간 [무상 1칼파를 잠행하다]), 붓끝에서 그려지는 난초잎이 여백을 견디며 팽팽하게 백지 위를 횡단하는 순간([立春]), 이 순간들은 순간을 넘어, 아니 순간을 통해 도달하게 될 어떤 영원의 세계를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언어들은 영원이라는 관념 속으로 투항하는 대신, 여전히 순간 자체를 재현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메타모르포스, 혹은 유쾌한 변신

이 <순간>이라는 것은 물론 시간의 물리적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모종의 변신, 혹은 탄생이 개입하는 우주적 <사건>의 배경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순간>의 기록, 혹은 명상록들이 진지하고 권위적이 깨달음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유쾌한 변신의 기록이라고 할만한 무엇이 그녀의 시에는 있다.

내가 나를 찰랑찰랑 흔들어 보인다 내 안,/행성들이 다이나믹한 턴테이블처럼 돈다
-[샬레 속 우주를 흔들다]부분

하지만 나는 지금,/이 시간의 쾌속정에 먼 훗날의/고스트들과 동승하여/체스를 두듯 시를 둔다/자, 어서어서/리드미컬한 심장 박동을 켜고/음악에 맞춰/뼛속가지 혼곤한/영혼 한 곡을 짜야지/아직, 찻잔엔 흰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나는 낄낄낄, 흐뭇한 웃음 입가에 흘리고 있다
-[즐거운 고스트]부분

나도 먼 바람이야//나는 내 등 뒤 매달린 그림자 지퍼를 열고 하나씩 보여주었지. 낡은 지도라던가, 깨진 록큰롤 음반, 고장난 나침반, 부패된 베이글 빵 부스러기들....//그들과 내가 흔적없이 풍경 미끄러질 때 멀리, 잠시 머물다 갈 바람의 집들 편주처럼 일렁였지. 휘휘 내 휘파람 경쾌했지
-[바람의 명상록]부분

그녀의 시는 허무의 중압감에 짓눌린 언어들을 채용하지 않는다. 행성들은 다이나믹한 턴테이블처럼 돌아가고, 화자는 시간의 고스트들과 더불어 낄낄거리고, 흔적없이 사라질 바람의 명상록 속을 경쾌한 휘파람으로 떠도는 것이다.<空>을 깨달아버린 자의 자유라고나 할만 한 것, 그런 것이 이 시편들에는 잠입해 있다. 아마도 이런 경쾌함이야말로, 집요한 묘사와 더불어 그녀의 시적 우주론을 풍요롭고 독특하게 만들고 있는 힘일 것이다.



<현대시학,200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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