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스님의 시평이십니다>
거주 증명서
신지혜
지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침묵으로부터 왔다 아무리/ 모질게 아파도 그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먼 겨울 하늘,/ 춤추며 혼자 발을 내리는 눈송이/ 시린 햇빛에 등 기댄,/ 우두커니 풀밭에 앉아있는 홈리스 고양이/ 철조망 아래 그림자 떨구고 빠알간 발가락으로/ 잔뜩 철조망 움켜쥔 괭이갈매기/ 내게 안부 묻고 넓은 등 보인 칸나 꽃들/ 그들은 모두, 떠나갈 때/ 자신의 그림자 말끔히 거두어 간다
누가 내 존재를 갑자기 불심검문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내 그림자 한 장 꺼내 제시할 것이다
'이 지구별 거주 증명서 한 장'/ </
나는 시시때때로 쓰러지는 내 그림자 일으켜 세우며/ 너덜너덜 해진 그림자 한 벌 다시 꿰매어 입고/ 마지막 안간힘 쓰기도 하였다
내 그림자는 단 한 벌 뿐이다/ 내 육신으로 만든 단 하나의 인장이며,
이 지구별 유일무이 거주 증명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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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네이도, 신지혜 시인의 시집을 받았다. 시인을 만난 적은 없다. 그래도 가끔 시인들이 시집을 보내주어 부담을 느끼곤 했다. 받긴 받지만 서평을 다 올리지는 못한다. 그런데 서평을 쓰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소설가다. 한때, 등단 초 필명을 달리 해 시를 쓰기도 했지만 시인을 접었다. 존재감도 없었다. 소설 서평은 어쩌다 지면을 준 잡지들이 있어 가끔 올리기도 했지만 詩쪽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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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시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거주 증명서가. 한때, 나는 수배자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주거불명, 주소불명의 땡중이었던 나를 詩 한 편이 돌아보게 해주었다. 예비군 훈련은 받질 못해 고발된 상태였고 지상에 있었지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 타인(다른 스님)행세를 하고 탁발승으로 돌아다녔다. 머리를 깎으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거기다 안경까지 끼고 있으니. 그래도 불심검문 당할까봐 가슴은 늘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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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그런데? 詩나 소설을 읽을 때 나는 그랬다. 저급독자인 나는 도입부 조금 읽다가 <내가 왜 이 詩를 읽어야 하지? 소설을? 그런데 뭐? 그런데 왜?>에 부합하지 않으면 읽지 않았다. 그랬다. 나도 <모질게 아파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시인의 육신, 몸이라는 그림자라는 <'이 지구별 거주증명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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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마음의 기반인가 장애인가. 사느라고 너덜너덜해진 나를 詩 한편으로 한참 사유케 하고 Identification하게 해준 시인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