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제목내가 읽은 한 편의 시: 신지혜 시인의 「토네이도」-김완 시인2020-12-0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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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한 편의 시: 신지혜 시인의 「토네이도」

김완

토네이도 / 신지혜

대륙을 강타한 토네이도 너는 처음에 무화과나무 밑에서
부스스, 가느다란 실눈을 떴지 고요해서 숨이 막혀요 너는
이따금씩 울부짖었지 너는 마침내 홀로이 길을 떠났지 너의
가느다란 휘파람으로 들꽃의 울음 잠재워주곤 했지 나 자신
이 누구야, 대체 누구란 말이야, 너는 외로움 씨눈 하나 빚었
지 너는 천천히 스텝을 밟게 되었지 누군가 너를 상승시켰지
점점 격렬해졌지 벌판 들어 올리고 내려놓으며 바다 철버덕
내리치며 빙글빙글 도는 동안, 휘말리는 대지, 바다, 허공이
너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었지 네 몸이 점점 부풀어 올랐지 루
핑들이, 입간판들이, 너의 손을 잡고 달려들었지

너도 처음엔 아주 미세한 숨결이었어
무화과나무 그늘 밑에서 겨우 부스스 눈을 떴어
처음부터 토네이도로 태어나지 않았어

토네이도는 캔자스 주 들판을 송두리째 뒤엎고 스스로 숨
을 거두었다 할딱이는 가느다란 숨결은 나뭇잎 한 장 뒤집
을 힘도 없이 어느 오후 공기의 대열 속에 틀어박혀 고요한
공기 눈알이 되었다 마치 한 사람의 격렬한 인생처럼, 치열하
게 광란하던 한 시절만이 벌판의 전설이 되었다

-「토네이도」 전문, 신지혜 시집 『토네이도』 중에서 상상인 시선 012

미국에서 활동하는 신지혜 시인의 시집 『토네이도』의 여는 시이며 표제 시로 수록된 「토네이도」라는 시입니다. 3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1연과 3연은 산문시, 가운데 2연은 보통의 서정시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밑에서 겨우 눈을 뜨고 고요해서 숨이 막혀 이따금씩 울부짖다가 마침내 홀로이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간신히 자아에 실눈을 떴으나 숨이 막혀 견딜 수 없던 청춘의 어떤 시절인 듯합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들꽃의 울음, 즉 세상살이에 지친 이웃들의 아픔도 다독거려 잠재워주곤 하지만 “나 자신이 누구야, 대체 누구란 말이야”라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근원에 대한 치열한 탐구가 시작된 것이지요.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마침내 스스로 “외로움 씨눈 하나 빚었지”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간 혹은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인연 혹은 우연 같은 도움으로 상승하고 격렬해졌다고 합니다. “벌판 들어 올리고 내려놓으며 바다 철버덕 내리치며 빙글빙글 도는 동안, 휘말리는 대지, 바다, 허공이 너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었지”라고 말합니다. 토네이도라는 자연현상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요. 세계를 막연하게 동경하던 시각이 자기 자신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이 세계,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을 각성하는 과정입니다.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 또 지상에 보셨나요/우주를 연 것도 나이며, 우주를 닫는 것도 나인데요”-「내가 고맙다」 부분. 질풍노도 같은 인생의 한 시절을 보낸 것이겠지요.

2연에서는 “너도 처음엔 아주 미세한 숨결이었어/무화과나무 그늘 밑에서 겨우 부스스 눈을 떴어/처음부터 토네이도로 태어나지 않았어”라고 짧게 요약하여 반복합니다. 3연에서는 토네이도가 소멸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격렬한 인생처럼, 치열하게 광란하던 한 시절만이 벌판의 전설이 되었다”. 파란만장한 생, 사람과 토네이도를 오버랩시켜 만든,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 사람과 삼라만상 그 존재에 대한 사유를 심오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멋진 시입니다. 우주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좋은 시들이 많습니다. 강호제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신지혜 시인 약력

서울출생
2000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200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밑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선정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최우수상
미주시인문학상
윤동주 서시 해외작가상
뉴욕중앙일보, 보스톤코리아신문, 뉴욕일보,
뉴욕코리아, LA코리아, 월드코리안뉴스 및
다수 신문에 좋은시 고정 컬럼연재
세계계관시인협회 (UPLI) United Poets LaureateInternational 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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