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마당]가을호.
공존의 세계를 꿈꾸는 세가지 방식- 中에서
-윤은경-
수천의 아바타가 뛰노는 공(空)의 밑줄
신지혜의 [밑줄]은 "한 올만 톡 잡아 당겨도 스르르 풀어버리는"([안개파크])삼천대천세계의 연기(緣起)에 붉은 밑줄을 좌악 긋는다. 그의 시편에 나타나는 모든 대상들은 개체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뒤얽히며 연기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카르마는 "균열된 공중 틈새"를 넘어 저편 시공간으로 스미고 녹고 왕래하며 인과 사슬의 다른 몸을 수천 번 살고 입고 벗는다. 동기(同氣)의 조응과 스밈이며 비워진 것들의 채움이며 채워진 것들의 비움인 한없는 윤회. 그 윤회의 시적 변용이 신지혜의 밑줄위에서 파동친다.
문득문득 나는 사라진다. 나는 저편의 나와 자주 교환된다. 왕래한다.스민다. 녹는다. 내 생각이 허공에서 딱딱한 덩어리로 뭉쳐지거나 크림스프처럼 주루룩 흘러내릴 때 있다. 나는 소리 없이 내 몸 거두어 휘발할 때 있다. 사나운 바람 이랴! 이랴! 채찍질 하며 거울속 사막을 혼자 마구 치달릴 때 있다. 균열된 공중 틈새로 내 사유의 발바닥이 늪처럼 빠질 때 있다. 꿈의 벼랑 끝에서 추락할 때 현실의 그물망에 걸려 내 날개 찢길 때 있다. 길을 둘둘 감고 있는 늙은 바오밥나무야, 내가 너를 여러번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 때 있다. 천천히 공중 선회하는 구름 독수리야, 내가 너로 살았고 입었고 벗었다는 생각이 들 때 있다. 사상거처도 없이, 밤과 낮에 무슨 연고도 없이, 무연히 정박할 때 있다. 내가 수천 아바타로 번쩍번쩍 몸 바꿔 환생할 때 있다
-[나의 아바타] 전문
시집 [밑줄]에는 불교적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특히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 윤회(輪廻),연기(緣起) 등이 시집 도처에 나타난다. [반야심경]에 보면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는 구절이 있다. 오온이 다 공(空)함을 비추어 보았다는 뜻이다. 오온(五蘊)은 색(色), 수(受),상(相), 행(行), 식(識)이 쌓인 것이다. 색(色)은 모든 물질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시간적 변화와 공간적 위치을 지닌 존재다. 좁은 의미로 색은 형상이므로 외계의 모든 물질적 대상인 반면 수,상, 행, 식은 색에서 촉발되는 주관적이고 내적인 작용이다. 그러므로 오온이란 존재의 육근이 사유대상인 육경에 촉발되어 받아들이고 상을 짓는 마음의 작용이다. 모든 존재는 오온으로 말미암아 서로 인연을 맺고 시간적으로 ㅂ젼화하며 현재와 미래를 이루는 것이므로 그 실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 모두를 개공(皆空)이라 하였다. 공(空)은 무(無)가 아니라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유무(有無)의 상태이다.
신지혜의 아바타도 색이며 공이요 공이며 색이다.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 아바따라(avatara)에서 유래한 말로 땅으로 내려온 신의 화신을 지칭하였다. 지금은 사이버 상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가상육체를 아바타라고 부른다. 현실과 가상사회를 이어주는 실명과 익명의 중간 존재인 아바타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으며 가상공간에서만 존재하니 실체인 동시에 헛것인 셈이다. 신지혜의 '아바타'도 실체/색이면서 헛 것/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신지혜의 아바타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상생의 무수한 현실을 오르내리며 전변(轉變)하는 존재의 화신이다. 지금의 '나'는 전생에서 늙은 바오밥나무로 살다가 차생에서는 구금 독수리가 되기도 한다. 실체 없이 가벼이 부유하는 존재이며 그 존재에 스민 "기억이며 환영"([홀로그램])이다. "수천의 아바타"로 변전하는 나는 무아(無我)이며 진아(眞我)이다. 모든 존재의 형상이고 질료인 아바타는 "얹힌 게 아무 것도 없는 밑줄"([밑줄])위에서 현란한 색의 춤을 춘다. 황홀한 춤, 그 천변만화하는 색의 세계를 떠받치는 밑줄이 바로 공이다.
공의 밑줄 위에서 몸 바꿔 환생하는 수천의 아바타들은 삼천대천세계의 연기로 묶여 있다. 수 많은 목숨들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시공간에서 똑같은 생명의 무게로 살아 숨쉬고 성장하고 죽는다. 물방울 하나도 "저 우주변방을 돌고 와"([나는 물이다])세계와 상관하며 "그렇게 작은 살 속에도 피가 흐르고 뼈가 있어/세상으로 닿는 길목, 씨 하나를 심"([물방울 하나가)]는다. 모든 존재들이 끊임없이 서로 연을 맺고 변화하는 상관성은 우주 안에서 또 끊임없이 우주를 창조하는 일이어서 난 하나가 꽃을 피워도 우주는 "단숨에 넙죽 받아 안"([난을 치다])는다. 왕래하고 스미고 녹는 상의 상관성(相依相關性)은 모든 존재들이 서로 활짝 열려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아니, 코끝으로 들락날락 하는 삼천대천세계가 '나'이며 내가 아니기도 한 우주적 변용태이니 의도하든 하지 않든 이미 열려 있는 셈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주적 사랑'이라 이름 붙일 있겠다.
시집 [밑줄]은 이런 윤회의 시적 변용태로 가득 차 있다. 시집 어느 곳을 펼쳐도 신지헤의 이미지들은 물과 불과 바람과 생명의 불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윤회의 아바타들로 북적거린다. 그의 시에는 "찌그러진 공기 한 알"도 "노오란 햇살의 실밥"([아득한 골목 저편이 아코디언처럼 접혔네])같은 이미지와 만나 접혔다 펴지는 우주 건반을 경쾌하게 두드린다. 화자는 "바람의 두 귀를 잡고"([나는 날았다]),"녹슨 시계바늘 움직여 무상 1칼파"([무상 1칼파를 잠행하다])를 "경계 없이 훨훨"(나는 날았다]) 날아다닌다. "물웅덩이 찬물 속에 부리를 처박고/점점 폐선처럼 가라앉는 목숨"([재두루미])이나 "모든 궤적이 마야처럼 일순 사라질"([안개파크])분이라는 쓸쓸함과 허망함을 노래할 때도 현재의 타임스퀘어에서 억겁을 읽어내는 밀도 높은 섬세함이 있다. 이처럼 [밑줄]의 미학은 무한한 생성의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근원을 폭넓은 상상력과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비감하지 않게 드러낸다.
인간의 육체엔 지구 46억 년의 역사가 배어 있으며 인간의 정신엔 우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고 한다. 신지혜의 거시적 관점에서는 인간은 물론 물, 불, 흙, 공기 등 자연물까지도 우주적 존재로서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한다. 시인은 전변하고 중첩하는 생명의 의미와 광활한 세계형성의 본질을 들여다봄으로써 상응하고 교감하는 존재론적 사랑의 본질을 통찰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계간[문학마당]가을호- (서평) 윤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