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8346 - 뉴욕=신지혜 시인
- 승인 2020.12.11 15:22
12월의 시
최연홍 시인
12월은 잿빛 하늘, 어두워지는 세계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세계의 한 모퉁이에 우울하게 서 있다 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올 것 같다 편지처럼
12월엔 적도로 가서 겨울을 잊고 싶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한 해가 가는 것을 잊고 싶네 아니면 당신의 추억 속에 파묻혀 잠들고 싶네 누군가가 12월을 조금이라도 연장해 준다면 그와 함께 있고 싶네 그렇게 해서 이른 봄을 만나고 싶네 다람쥐처럼
12월엔 전화 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다정하다 차가워지는 저녁에 벽난로에 땔 장작을 두고 가는 친구 12월엔 그래서 우정의 달이 뜬다 털옷을 짜고 있는 당신의 손, 질주하는 세월의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그 후에 함박눈 내리는 포근함
선인장의 빨간 꽃이 피고 있다 시인의 방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다 친구의 방에는 물이 끓고 있다 한국인의 겨울엔.
12월의 명시가 있다면 단연코 이 아름다운 시다.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시, 바로 ‘12월의 시’다. 당신이 한 해의 끝에 서서 아쉬움과 우울, 이별, 또는 만감이 교차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고요하게 타오르는 따스한 장작불 같은 이 시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꽁꽁 언 마음을 녹이시라.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운 또는 먼 친구에게, 한 해 동안 서러움 속에서도 그동안 참 애썼노라고, 이 시가 당신을 어루만져준다. 당신의 성실한 발자국들을 헤아려보고 위무해주며, 당신의 고단한 여정과 아쉬움을 상쇄시켜 주고 싶노라, 라고 시인이 당신의 수고한 손을 따스하게 맞잡아주는 듯한 ‘12월의 시’.
이 시엔 따스한 온기의 나눔이, 아름다운 노래의 매혹적 리듬이 들어있다. ‘누군가가 12월을 조금이라도 연장해 준다면 / 그와 함께 있고 싶네 / ‘12월엔 전화 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다정하다 / 차가워지는 저녁에 벽난로에 땔 장작을 / 두고 가는 친구’가 있으며, 누군가를 위해 ‘털옷을 짜고 있는 당신의 손’이 들어있다.’
어느새 마지막 달에 도달한 시간의 빠른 속도를 공감하며, 우리는 동 시간대 위에서 서로 함께 정을 나누는 사람이며, 사랑과 우정에 기대어 서로 비추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시인은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그리하여, ‘우정의 달이 뜬다’라고 시인이 일러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시인의 방뿐만 아니라 친구의 방에서도 ‘물이 끓고 있다’라고 그 나눔의 따스함을 전해준다.
자, 어떠신가. 지금 당신의 창밖에는 ‘함박눈 내리는 포근함’이 있고 벽난로에선 장작불이 타고 있으며, 이 ‘12월의 시’ 속에서 위안과 평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두 손 포개고 누군가에게 간곡히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연홍 시인은 충북 영동 출신이며, 1963년 연세대 재학 중 《현대문학》으로 데뷔했다. 연세대와 미국 인디아나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미국 위스콘신, 버지니아, 미시시피, 워싱턴에서 대학교수 및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로 역임했다. 미국의 여러 문예지와 PEN International (런던)에 시가 발표되었으며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계관시인 초청으로 한국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시 낭송. 시 ‘아리조나 사막’은 Mildred(뉴욕)가 미국 남서부를 그린 최고의 시편으로 선정되었다. 단편 Short Story International(뉴욕)가 미국 대학교재에 수록. 시가 포르투갈어로 번역, 브라질에서 발표됨.
서평이 World Literature Today(오클라호마 대학 영문과)에서 발표되었으며, 에세이는, , , 에 게재되었으며, 칼럼니스트를 역임했다. 시집으로<정읍사> <한국行> <최연홍의 연가>, <아름다운 숨소리>, <하얀 목화꼬리사슴>, <잉카여자>,<별하나에 어머니의 그네> 등이 있으며, 영문시집으로 <가을어휘록 Autumn Vocabularies>, <뉴욕의 달 Moon of New York>, <코펜하겐의 자전거 Copenhagen's Bicycle>, <겨울이여, 안녕! Adieu, Winter>이 있으며, 회고록 , 에세이집 <섬이 사라지고 있다> 외 다수가 있다.
필자소개 《현대시학》으로 등단,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미주시인문학상, 윤동주서시해외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세계 계관시인협회 U.P.L.I(United Poets Laureate International) 회원. 《뉴욕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보스톤코리아》 《뉴욕일보》 《뉴욕코리아》 《LA코리아》 및 다수 신문에 좋은 시를 고정칼럼으로 연재했다. 시집으로 『밑줄』, 『토네이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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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신지혜 시인 shinjihye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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