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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구신문] <문화춘추> 익스큐즈 미/ 신지혜 시인 칼럼2019-07-29 03:38:23
작성자
2006·09·05 11:38 | HIT : 3,180 | VOTE : 262

 

 

[대구신문]


[문화] <문화춘추> 익스큐즈 미



신 지 혜 (시인)


복잡한 거리에서나 상점에서 우리는 '익스큐즈 미'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게된다. 많은 인파가 휘몰리는 상점이나 거리에서 우리는 조금 부딪히거나 발등을 밟을 수도 있고 하물며 떠밀면 좀 어떤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나는 사회가 바로 미국이다.

우리는 대대손손 깎듯이 예의를 갖추고 삼강오륜의 그늘 안에서 살아온 문화 관습이지만, 거리나 상점에서 상대를 배려하는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별일 아닌 것도 몇 걸음 밖에서부터 익스큐즈 미를 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고 인간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겉으로만 가식적으로 차갑게 내뱉는 말일뿐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별일 아닐지라도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범죄와 무감각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켓의 좁은 골목을 지나쳐도 절대로 타인의 몸과 수레를 건드리는 법이 없다. 닿거나 스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익스큐즈 미'다. 하지만 남에 대한 봉사나 도네이션을 자발적으로 너도나도 내놓아 더불어 산다는 인식을 가진 사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다수에게 바람직하고 옳다는 판단을 중시한다. 아이들이 걸음마 떨어지기 이전부터 배우는 것이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것부터 배우도록 엄하게 교육시킨다.

타인의 몸을 스치기도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익스큐즈 미의 나라에서 타인을 위한 기부나, 자선사업에 열일 제치고 동참하는 그 저력의 힘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익스큐즈 미'의 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겠는가 짚어본다.

서부시대엔, 너나할것없이 총잡이들의 활거 무대였으며 언제 어디서 억울한 총알이 날아왔을 지도 모르고 언제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시대가 있었다. 타인에게 기분 나쁜 인상을 가지고 대했다가는 여지없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소리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악의 없는 표정으로 늘 상냥하게 웃으며 미리 양해를 구해야 했을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지 않으려는 그러한 노력이 그 뿌리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 생소하게 듣게되던 익스큐즈 미는 이제 낯설지 않은 배려의 말과 인간미 어린 소리로 내 귓전에 스며들게 된다. 쌀쌀맞고 냉정한 이성의 소리로 접수되었던 그러한 어감과는 180도 다르게 들려온다. 아니 이제는 내 쪽에서 먼저 익스큐즈 미를 건네곤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까 우려한다는 말, 그리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말인 것이다.

흔히, 이 만한 감정쯤이야. 나 하나의 작은 일쯤이야 하다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일은 없는가. 방심의 씨앗이 불신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오랫동안 쌓아왔던 우정이나 사랑이 금이 간 적 있는가. 스스럼없는 사이여서 오히려 부담 없이 친한 관계일수록 익스큐즈 미인 것이다. 인간관계 역시 탑 쌓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열 개의 돌로 아무리 정성껏 쌓아 올려도 단 한 장의 실수로 아홉 개의 탑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 있는 것. 그리하여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가, 하며 상처 운운하게 되고야 마는 것, 그러므로 한 장 한 장의 익스큐즈 미를 정성껏 쌓아올릴 수록, 인간적인 관계는 더 견고해지고 더욱 더 밝아지는 것은 아닐까.

 

 

입력시간 : 2005-05-08 17:12:17

 

#대구신문# 문화춘추# 익스큐즈 미-신지혜 시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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