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신문] [문화] <문화춘추> 맨해튼 거리의 침묵 시위들
신지혜 (시인)
몇 일전, 링컨 터널입구에서 한 무리의 시위대를 보았다. 불법체류로 여러 가지 인권 침해적인 코너에 몰리고 있는 사람들의 데모대였다. 그들은 묵묵히 가도에 서있었다.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메가폰을 들고 있다거나 현란한 플래카드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자그마한 도화지 한 장에 '우리인권을 보호하라'라는 문구 하나가 전부였다. 물론 분기충천한 고성도 격분한 항의자도 없는 실로 조용한 침묵시위였다.
나는 때때로 미국 어디서나 이러한 침묵시위를 목격하곤 한다. 911테러 이후 많은 일자리를 쫓겨난 사람들이 맨해튼 시가지를 행진하던 모습과 이라크 전쟁반대 시위, 그리고 크고 작은 단체들의 시위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또 언젠가는 맨해튼 32번가 에서 50여명의 중국인들이 도로에 일사불란하게 늘어선 채 묵묵히 서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역시 중국정부는 '파륜공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을 뿐이었다.
이곳의 시위와 집회는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며 일상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간을 피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조용한 항거로 묵묵히 행진할 뿐이며, 어찌되었든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자는 것에 주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시위로 타인의 생활에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미리 사전에 지역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어있고 경찰은 그저 시위대의 돌발적인 안전과 보호를 위하여 그 뒤를 묵묵히 따라가며 그저 교통정리를 할 뿐이다.
대부분의 지역현안들은 지역의 커뮤니티 안에서 건의안이 상정돼 여론을 모아 토론을 거쳐서 수용되므로 항의의 표시로 다수가 몰려나와 거리를 점령하는 법이 별로 없으며, 그 외의 가벼운 법안에 얽힌 문제는 지역 법정에서 해결되므로 구태여 밖으로 나와서 침묵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예외적인 경우들뿐이다. 즉 자신의 의사를 현 정부나 사회에 반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여겨진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침묵시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쌍방의 신축성있는 태도가 지극히 탄력적이고 수용적이라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준법의 범위 내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그만큼 원활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법치주의의 존립을 존엄하게 여긴다는 일반적 시민 개념이 전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이러한 사회조성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한다.
세상 어디나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 사이에 알력과 불협화음은 항상 발생하는 법이다. 그러나 평화적으로 의사 소통이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것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안정된 사회가 아닐 것인가 한번쯤 곰곰 생각해보게끔 한다.
입력시간 : 2005-04-24 18: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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