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슬픈 갈비/임창현.2019-07-26 19:57
작성자

2009·12·18 01:26 | HIT : 4,209 | VOTE : 412




[시로 여는 세상]

 

슬픈 갈비

 

임창현

 

나이를 먹어
귀 순해지니
세상 것
다 순해지네

지나가는 바람
한갓 풀잎 손짓에도
그저
문 다 열어주고 싶어

자두 복숭아 떨어지는
소리 굴리고 오는
쉰 살 먹은 추억

생각하면
그리움도 설움이지만

간밤에는 갈비를 억수로 먹었네
허기진 지각으로 무진장 씹어댄 갈비
어쩌자고 그렇게 많이 먹었을까
그런데 깊은 밤 날 새도록 잠 오지 않아
다음날도 하루 종일 우울했네

슬픈 소를 많이 먹어설까
생전 매 맞고 일 너무해
슬프게 살았던 소였었나?

갈비 한 대 빼고 사는 나
내 갈비 하나 얻어 사는 너
우리도 다 얻어 사는 삶, 외양간 세상

나도 하늘 머슴 살지

슬픈 소갈비 먹은 날
슬픈 소와 슬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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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소의 인연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인간의 양식을 일구어 주는 일은 물론 사후까지도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보시해주는 것이 소 아니던가. 시인은 ‘우리도 다 얻어 사는 삶, 외양간 세상’ ‘나도 하늘 머슴 살지’라고 아픈 생을 조응하고 공존한다. 외양간에서 물끄러미 어스름을 담아내던 순한 소, 눈물 흘리는 소를 본적이 있다. 인간이 소에게 빚을 지고 사는 일 아니던가.

 임창현 시인은 전북 군산 출생.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졸업. 시집으로<그리고 또 그리고><추억은 팔지 않습니다><워싱턴 팡세><우리에겐 블랙박스가 없다> 및, 시선집 <블랙박스>등 다수 영시집 및 수필집이 있으며 평론집<아니무스의 변명><궁핍한 시대의 아니마 1.2>가 있다. 워싱턴문인협회 창립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조선시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 펜문학상, 재미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뉴욕일보』2009년 12월 7일(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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