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5 02:33 | HIT : 4,270 | VOTE : 357
[시로 여는 세상] 여백 조창환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몇 알 푸른 하늘에서 마른번개를 맞고 있다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지고 눈부신 寂滅만이 바다보다 깊다 저런 기다림은 옥양목 빛이다 칼 빛 오래 삭혀 눈물이 되고 고요 깊이 가라앉아 이슬이 될 때 黙言으로 빚은 등불 꽃눈 틔운다 두이레 강아지 눈 뜨듯
이 차갑고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 ‘눈부신 적멸’ 그렇다! 계절을 헤아리는 동안, 세상에서 눈을 돌려 잠시 옥양목 빛같은 여백의 시간을 얼마만큼이나 가져볼 수 있었던 것일까. 삶의 난장을 서둘러 짚어가는 동안, 생을 소비하면서 저토록 고요한 여백을 얼마나 많이 접해볼 수 있었던가.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고 한다. 올 한 해가 다 저물기 전에 소란했던 눈과 귀, 마음의 잔재들을 저 명징한 여백에 온통 씻어보리라. 조창환 시인은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빈집을 지키며> <라자로 마을의 새벽> <그때도 그랬을 거다> <파랑 눈썹> <피보다 붉은 오후>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임. 신지혜<시인> 『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2009년 12월 21일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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