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여는 세상'-식당의자/문인수. (1)2019-07-1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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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세상』 
<미당문학상 수상작>
 
식당의자
 
문인수(1945~)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
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
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
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
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
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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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의자다. 소가죽 안락의자도 아니고 엔틱의자도 아닌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버려져 있다. 평범한 서민적 애환 속에서 삶에 지치고 고단한 자를 앉혀주고 뼈아픈 생의 궁핍과 허기를 토닥여주었던 바로 그 의자가 아닌가. 이제 그 의자가 휴식한다. 이는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애잔한 연민마저 자아내게 한다. 거친 세파에 단련되어 엔간한 비에도 젖지 않는 바로 그 전문가인 의자. 인도의 수련된 요가승 같다. 녹록치 않은 우리네 삶과도 다름없는 식당의자의 고요한 휴식이, 그 환한 여백의 결 무늬를 나부끼며 우리에게 선명하게 다가선다.
 문인수 시인은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뿔』『동강의 높은 새』『쉬!』등이 있으며,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 <신문 발행일-2007.1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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