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여는 세상'-자화상/유안진.( 2007.12.24일자) 『시로 여는 세상』 자화상 유안진(1941~) 한 오십년 살고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비와 이슬이 눈과 서리가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헝이 울어대는 이 겨울도 한 밤중, 뒷뜰 얼음 밭을 치달리는 눈바람 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 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 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 묻히고 더럽혀지며, 허상에 넋을 잃어 진실을 놓치며, 죄업에 혼이 빠져 정직을 못 가리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 리 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더 살만한 곳이며, 흐르고 떠도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뒤 돌아다 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었어라. *******************
이 잔잔한 울림의 잠언 같은 시에 귀를 대보라. 생이란 "때얼룩에 쩔을수록" 더 큰 나로 더 넓은 광활한 곳으로 자유자재 흘러가며, 자연과 한 몸이 되는 것이라 한다. 즉 유연한 자연의 흐름을 통하여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떠돌아 흐르는 우리 인생의 자유와 생의 지혜로움을 나직이 들려준다 이 아름다운 시가 우리들의 생을 다시 한번 흔들어 일깨우며, 오래도록 위무해준다. 유안진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달하」「그리스도, 옛애인」「봄비 한 주머니」「다보탑을 줍다」등 다수 시집, 한국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월탄문학상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뉴욕일보] 2007년 12월 24일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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