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1 23:39 | HIT : 4,405 | VOTE : 367
[시로 여는 세상] 수수께끼
허수경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물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 돌아보면, 우리 생의 뒷페이지에 이처럼 암호처럼 빛나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가슴 아릿하게 저민 사랑을 유적인듯 남몰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으랴.수수께끼처럼 어긋나야 할 사람들, 빗나간 인연으로 새겨지는 일. 우리 사는 일이란 서로가 인연이거나 인연이 아니거나 다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 그리하여 옷깃이 한번 스칠 때마다 오백 겁 인연에 의해 우리서로 들고나며 여기를 건너가는 것.
허수경 시인은 경남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등이 있다.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9년 3월 30일자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