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6 07:31 | HIT : 4,203 | VOTE : 409
[시로 여는 세상]
소나무
조용미
나무가 우레를 먹었다 우레를 먹은 나무는 암자의 산신각 앞 바위 위에 외로이 서 있다 암자는 구름 위에 있다 우레를 먹은 그 나무는 소나무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려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겨버렸다 칼자국이 지나간 검객의 얼굴처럼 비스듬히 소나무의 몸에 긴 흉터가 새겨졌다 소나무는 흉터를 꽉 물고 있다 흉터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한다 흉터가 더 푸르다 우레를 꿀꺽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툭 불거져나와 구불구불한 저 소나무는 ---------------- 소나무는 상록수이며 흔히 불변의 영원성, 생명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청청한 기개와 곧은 절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시속 소나무가 우레를 먹고 번개를 삼켰다니!그리하여 여기저기 흉터 투성이인 것이다. 그 '흉터가 더 푸르다' 한다. 생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받아안은 이 소나무의 처연한 모습이 이토록 저릿하다. 결국 소나무는 삶을 감내하고 견뎌냄으로써 '흉터를 꽉 물고' 더욱 더 청청한 푸른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우레 번개를 삼킨 소나무 앞에서 누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조용미 시인은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등이 있으며,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2009년 9월 14일(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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