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30 23:31 | HIT : 4,263 | VOTE : 490
[시로 여는 세상] 걸림돌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돼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인간이 저마다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은 이리저리 부대끼며 깎이고 다듬어지며 어우러지는 존재 아니던가. 즉 여정에 있어, 무수한 걸림돌들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이 시가 일깨운다. 그렇다. 삶의 문제가 되는 무수한 이 걸림돌들로 이루어진 여정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생존의 근원적 속성이며, 보다 확실한 우리 존재의 이유와 삶을 꾸려가는 동력의 기저가 되기도 하는 것 아니랴. 걸림돌들이 바로 우리 생을 이끌고 성장시켜나가는 삶의 기제가 되는 것임을 이 시가 짚어주며 우리를 위무하고 있다. 공광규 시인은 서울 출생. 동국대 국문과,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6년『동서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등 다수 저서 및, 윤동주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9년 9월 28일(월)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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