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 노 을........배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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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노을-배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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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배용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해가 질 때 지상의 먼지들이 붉게 타오르는 건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지들의 혈맥 속에 진한 피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멸을 위한 춤이 아니다
무거운 형체를 꺼내놓고 잠시
한때의 가벼움을 향하여 제사를 올 리는 것
환생의 사원에 들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고 믿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종교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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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저녁노을이 핏빛으로 붉게 물드는 현상은 수증기와 공중의 미세 먼지들에 햇빛이 산란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흔히 통념적인 노을의 이미지란 인간의 황혼을 대변하고 덧없이 스러질 소멸을 위한 마무리 과정이 아닌가. 그러나 시인은 흔히 얘기하는 쇄락의 징후나 소멸을 위한 춤이 아니라고 갈파한다.
즉 그것은 '한때의 가벼움을 향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이며 '환생의 사원에 들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한다. 즉 신성한 제의를 올리고 다시 환생의 코스를 거치는 것임을 이 시는 투명하고 섬세하게 그려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우주적 순환계를 유지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유한하지만 그것 역시 완전한 소멸은 아닌 것이며 뜨거운 피가 돌고있는 우주의 순환론적 존재임을 예측케 한다.
흔히 노을을 일컬어 폐허의 소멸을 논하는 자들의 고착된 인식론에 시인의 확고한 사유는 일격을 가한다.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보편적 명제를 믿는 시인의 의지적인 통찰과 사유가 우주론적 인식을 증폭시켜준다. 이 시는 우리를 광활한 저 우주의 한가운데 환생에 대한 무한한 사유를 풍요롭게 진작시켜주며 폭넓은 사유로 따뜻하게 이끌어준다.
배용제 시인은 전북 정읍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1997)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삼류극장에서의 한때' '이 달콤한 감각' 등이 있다. 뉴욕중앙일보 입력시간 :2004. 10. 04 17: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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