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 블랙홀......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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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블랙홀-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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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윤의섭
풀섶에서 쇳조각을 주워들자
주위 덩굴이 뿌리째 뽑혀 나왔다
이 쇳조각도
내년쯤엔 꽃망울 피우고
바람에 하느작거렸을 텐가
산길에 졸며 서 있는 전봇대
반은 나무가 되었다
두드려보면 오래 스민 수액이 찰랑거린다
딸애 머리에 들꽃을 꽂아주고도 모자라
토끼풀로 팔찌 발찌를 엮었다
사람이 꽃으로 피는 건 백년도 안 걸린다
산자락을 넘어선 바람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물 속을 헤엄친다
겨우 한나절 동안 이 별에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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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 인
이 시에서 시인은 풀 섶에서 주워든 쇳조각에 뿌리가 내려 있다 한다. 비록 쇳조각이라고 뿌리를 내리고 꽃이 피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쇠도 모든 숨쉬는 피조물들과 공존하는 존재인 것이며 꽃이 피는 존재라고 무한한 상상력에 닿게 한다. 그뿐인가. 산길에 졸고 있는 전봇대마저 이미 반은 나무가 되어 서있다고 한다. 즉 이 시에선 많은 것들의 존재들이 서로 자유자재로 상통하고 교환된다. 말 그대로 블랙홀적 현현이다.
쇠는 뿌리를 내리고 꽃을 매달며 바람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물속을 헤엄치고 유한한 목숨의 인간은 꽃으로 피어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개념을 무화시키고 인간의 편향된 인식의 제동장치들을 속시원히 풀어제끼고 왕래한다. 이 모든 현상이 겨우 한나절동안 생긴 별의 일이라 하니 시인의 상상력은 틀에 박힌 통론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여 거대한 우주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다시 사물을 신축성있는 자유로 재창조시킨다. 이 시는 독특한 시인의 우주관과 함께 여유로운 상상력의 새 카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윤의섭 시인은 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문학과 사회'(1994년)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말괄량이 삐삐의 ?
뉴욕중앙일보 입력시간 :2004. 09. 28 13: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