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 누가 우는가--------나희덕.
누가 우는가
나희덕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폭우 속에서
미친 듯 우는 것이 바람은 아닐 것이다
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
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
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
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
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유리창에 들러붙는 빗방울들
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들의 것
나뭇잎들의 것
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
뿌리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
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창밖에 있다
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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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비바람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뇌성벽력이 내려치는 비오는 날의 창밖을 바라다본 사람들은 알리라. 이 시는 창 밖의 소리를 누군가 우는 소리로 인식한다. 열린 창 틈사이로 숨어드는 애절한 울음소리를 감지하며 시인은 모성적 연민으로 감싸안는다.
그 견딜 수 없는 울음의 실체는 바로 빗방울들 혹은 나뭇잎들 나뭇가지들의 울음소리 일 것이라고 유추한다. 그러나 마침내 시적 화자와도 다름없을 '나무 한 그루'가 창밖에 울부짖고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된다.
이 시는 대상적 존재들의 상처와 울음을 품어주며 물화되어 한껏 어우러지게 한다. 폭우가 몰아치는 정황 속으로 함께 시뮬레이션속으로 빨려들어 흐느끼게 한다. 비바람 몰아치는 폭우 속의 이 안간힘을 쓰는 나무가 바로 시인내부에도 울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여그 자연적 생명력으로 함께 충일하게 한다.
또한 낮은 곳과 소외된 사물들의 통점을 같이 느끼고 호흡하는 시인의 감성적 사유가 이 시속엔 서럽게 나부낀다. 누가 우는가. 이 휘몰아치는 세상 빗속에서….
나희덕 시인은 충남 논산 출생(1966년)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1989년)로 등단.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만들었다' '어두워진다는 것' '그곳이 멀지 않다' ' 사라진 손바닥'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입력시간 :2005. 01. 10 17: 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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