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신전
박진성
동백은 봄의 중심으로 지면서 빛을 뿜어낸다 목이 잘
리고서도 꼿꼿하게 제 몸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랑이다
파르테논도 동백꽃이다 낡은 육신으로 낡은 시간 버티면서
이천오백 년 동안 제 몸 간직하고 있는 꽃이다 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먼 데서부터 소식 전해오겠는가
붉은 혀 같은 동백꽃잎 바닥에 떨어지면 내 입에 넣고
싶다 내 몸 속 붉은 피에 불지르고 싶다 다 타버리고 나서
도 어느 날 내가 유적처럼 남아 이 자리에서 꽃 한 송이
밀어내면 그게 내 사랑이다 피 흘리며 목숨 꺾여도 봄볕
에 달아오르는 내 전 생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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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이 시는 뜨겁다.
동백을 그 무엇에 견줄 수 있으랴. 서설속에서도 봄을 찢으며 꽃을
내미는 동백은 말 그대로 고매한 지조의 자태로 빛을 뿌리며 봄을
휘황하게 밝힌다.
'목이 잘리고도 꼿꼿하게 제 몸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랑이다'라고
하듯, 결연한 지조를 가진 동백은 오랜 역사의 파르테논 신전과도
같은 존재라고 갈파하며 또한 영속적인 존재를 번복하여 피워낸다고
이 시는 드러낸다.
이러한 동백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정신과 몸 역시 신전임에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내가 유적처럼 남아 이 자리에서 꽃 한 송이 밀어내면 그게
내 사랑이다'라고 한다.
이 시는 피고 지는 꽃을 영구한 유적의 존재로 인식한다. 피고지는
꽃인 우리 역시도 부단없이 유적처럼 또다시 사랑을 피워내는 영속
적 존재임을 일러준다.
어디 동백이 그저 이름뿐인 동백이겠는가. 한 존재가 그저 피고 지
는 존재일 뿐이겠는가. 동백신전이다! 시인의 유적같은 존재로서의,
불같은 의지의 시선이 활활 불타오른다. 즉, 이 시는 그 뜨거운 선포
이며 불꽃이다.
박진성 시인은 1978년 충남 연기 출생.'현대시'(2001년)로 등단
하였으며 시집으로 "목숨"이 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5.06.07.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