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칼럼 >계간-송상욱시지 25호
신지혜 시인의 추천[미국 현대시]
Tar
C. K. Williams
The first morning of Three Mile Island: those first disquieting, uncertain,
mystifying hours.
All morning a crew of workmen have been tearing the old decrepit roof
off our building,
and all morning, trying to distract myself, I've been wandering out to
watch them
as they hack away the leaden layers of asbestos paper and disassemble
the disintegrating drains.
After half a night of listening to the news, wondering how to know a
hundred miles downwind
if and when to make a run for it and where, then a coming bolt awake
at seven
when the roofers we've been waiting for since winter sent their ladders
shrieking up our wall,
we still know less than nothing: the utility company continues making
little of the accident,
the slick federal spokesmen still have their evasions in some semblance
of order.
Surely we suspect now we're being lied to, but in the meantime, there
are the roofers,
setting winch-frames, sledging rounds of tar apart, and there I am, on
the curb across, gawking.
I never realized what brutal work it is, how matter-of-factly and harrow-
ingly dangerous.
The ladders flex and quiver, things skid from the edge, the materials are
bulky and recalcitrant.
When the rusty, antique nails are levered out, their heads pull off; the
underroofing crumbles.
Even the battered little furnace, roaring along as patient as a donkey,
chokes and clogs,
a dense, malignant smoke shoots up, and someone has to fiddle with a
cock, then hammer it,
before the gush and stench will deintensify, the dark, Dantean broth
wearily subside.
In its crucible, the stuff looks bland, like licorice, spill it, though, on
your boots or coveralls,
it sears, and everything is permeated with it, the furnace gunked with
burst and half-burst bubbles,
the men themselves so completely slashed and mucked they seem almost
from another realm, like trolls.
When they take their break, they leave their brooms standing at attention
in the asphalt pails,
work gloves clinging like Br'er Rabbit to the bitten shafts, and they slouch
along the precipitous lip,
the enormous sky behind them, the heavy noontime air alive with shim-
mers and mirages.
Sometime in the afternoon I had to go inside: the advent of our vigil was
upon us.
However much we didn't want to, however little we would do about it,
we'd understood:
we were going to perish of all this, if not now, then soon, if not soon,
then someday.
Someday, some final generation, hysterically aswarm beneath an at-
mosphere as unrelenting as rock,
would rue us all, anathematize our earthly comforts, curse our surfeits
and submissions.
I think I know, though I might rather not, why my roofers stay so clear
to me and why the rest,
the terror of that time, the reflexive disbelief and distancing, all we should
hold on to, dims so.
I remember the president in his absurd protective booties, looking
absolutely unafraid, the fool.
I remember a woman on the front page glaring across the misty Sus-
quehanna at those looming stacks.
But, more vividly, the men, silvered with glitter from the shingles, cling-
ing like starlings beneath the eaves.
Even the leftover carats of tar in the gutter, so black they seemed to suck
the light out of the air.
By nightfall kids had come across them: every sidewalk on the block was
scribbled with obscenities and hearts.
시 번역-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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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윌리엄스 약력
C.K.윌리엄스(Charles Kenneth Williams)는1936년 1936년 뉴저지의 뉴왁에서 출생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프린스턴 대학 창작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01년 시집 [repair]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Lies] [Women of Trachis, by Sophocles][The Lark, The Thrush, and The Starling][Tar][Flesh and Blood][The Bacchae of Euripides][I Am The Bitter Name][A Dream of Mind]][The Vigil][Repair][misgivings][The Singing][Collected Poems]등 15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그 외,미국 아카데미 Morton Dauwen Zabel 상, Lila Acheson Wallace/리더스 다이제스트 작가상, 루스 릴리상, Harriet Monroe상, Pen/Voelker 경력 공로상, 구겐하임 재단상등을 수여 받았다.
C.K.윌리엄스 시 해설
신지혜(시인)
Charles Kenneth Williams( 차알스 케넷 윌리엄스)는 미국의 중견시인으로, 2000년 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미국에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존경받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C.K 윌리엄스는 미국의 전통 서정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적 교두보를 확보하여 대담한 시를 많이 쓴 시인으로 시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뉴저지 뉴왁에서 세일즈맨인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인 어머니사이에서 출생했으며 현재까지 15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19세부터였으며 다독(多讀)하는 시인으로서, 고전 및 철학, 세계문학을 모두 섭렵하고 티벳, 일본의 하이쿠와 중국시및 동양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때, 그에게도 문학에 대한 절망적인 회의와 시련이 있었다고 그는 자신의 문학전기에서 고백한다. "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내 자신이 문학적으로 한때 고통스러웠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쓸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내가 대체 무슨 시를 써야할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라고 그는 술회한다. "그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독서를 했으나, 어디서도 내가 존경할 만한 뛰어난 시인은 보이지 않았으며, 나는 마치 난파선처럼 회의의 암흑속을 헤매며 고뇌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문학적 절망과 자아에 관한 지독한 고뇌의 암담한 터널을 통과함으로써, 내가 비로소 성숙한 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 말하고 싶다" 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오늘날, 작가 자신의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독창적인 시의 시적 궤도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그가 현대 미국 시인중에서 가장 추앙받는 대시인의 한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점이 매우 돋보인다.
위의 시 '타르'는 섬마을에 지붕을 얹어주러 온 인부들이, 작업하는 정황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한 시다. 그 정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애환에 촛점을, 그리고 배후의 정치와 관료주의의 부패를 겨냥한 사회비판, 그리고 종교에 관한 심리구조를 명료하게 그려준다. 시대적으로 비꺽이는 부조리함을 서민의 눈으로 분해하고 자조적인 성찰로 풍자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의 시편들의 특징이라면, 비교적 사회적 진실을 정직하게 목도하며, 서사적 풍경으로 세밀하게 그려내는 특징을 지닌다. 그는 비교적 기인 산문시적 형태를 유지하며, 전통적 시의 인습을 과감히 배척하고 월트 휘트먼처럼 시적 구성이 매우 광범위하고 치밀하다. 그는 각종 세계에 대한 욕구를 시속에 담아내고 있는데, 정치, 사회, 종교 등의 모든 것을 시적 전략으로 수용한다. 즉 한 가지 문제를 뚫어지게 응시한다기 보다, 시 속에 많은 것을 담아냄으로써, 그는 시적 스케일이 큰 작가로 평가된다. 치밀한 구성형태와 폭넓은 각도로 타고난 감수성과 지적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사물을 조명한다. 물화된 현실세계의 옷을 벗기고 침착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즉, 눈에 보이는 일상적인 시의 오브제속에 정치, 사회적 비판, 그리고 인간의 존재, 인간의 기본적 권리, 사회적 부조리한 통념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고 서슴없이 일갈하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시집[Lies]-1969)은 정당한 시민들의 권리로 인간상실에 대한 옹호, 무참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눈에 띤다. 그의 시적 관심이 어느 한 범주를 고집하지 않고, 종횡무진 하여 사랑의 상실, 유년시절 각인된 옛 기억, 현 세대의 도덕, 인류의 의식, 그리고 상처받은 휴머니티에 관한 문제들의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그는"나는 대시인 호머를 꿈꾸기보다, 한 사람으로서의 시인의 아이디어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발상과 시적 행로를 꾸준히 개발하는 그의 겸허한 각고인 것이다. 그는 또한 "모든 시는 음악을 가지고 있다. 음악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 뇌리 속을 부유하거나 책상 위에 떠도는 공론처럼 그저 공허하게 부유할 뿐이다"라며, 시의 음악성과 시의 내적 운율을 자장 중요하게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최근, 이라크 전쟁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며 전쟁 종식을 선포하기도 했다. 부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이 희생되는 죄없는 지구촌 어린이들, 도시와 생태파괴를 자행하는 인간의 무책임성 등 잘못된 인류의 역사가 일구어놓은 것들을 '무엇이든 빗나가게 하는 왕좌의 올빼미'로 비유하여 권력자들을 향하여, 일침을 놓으며 맹렬히 비난했다. 생의 한복판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위협하는 잘못된 문제들과 정녕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인권회복을 위해 부르짖는다. 또한 어린이, 노동자, 소외된 홈리스들, 가난한 서민생활과 학대받는 이들의 상처받는 현대인의 마음을 따뜻이 위무해주고, 진정한 휴머니티의 정의를 보여줌으로서 모두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이처럼, C.K 윌리엄의 문학관은 미시적 시각 쪽에만 편향된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인류, 역사, 현실의 모든 근원적인 아픔을 껴안고 함께 공유하고 깨달을 수 있는 사유적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의 보고는 무엇보다 그의 사려깊은 통찰력의 사고에서 기저된 것이다. 그러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안과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의식이 없었다면 그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문학성을 구가할지라도 인간의 귀중한 생명과 도덕적 정의를 벗어나서는 올바른 문학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간혹 그의 시편은 때때로 독자에게 자아반성을 요구하며 서늘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그의 민중을 위한 따스한 혜안,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 개안된 의식과 함께 예민하고 유연한 그의 사고관에서 우러난 시편들은 이 세상 한복판의 비참함에 동참하고 비애를 극소화시키고 있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오늘 날 그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1819-1892)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William Carlos William, 1883-1963)등의 전통시인들과 버금가는 시인으로 자리 매김되어 널리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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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