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27 22:05 | HIT : 3,390 | VOTE : 211
[미주중앙일보]<시와 함께>견딜 수 없네-정현종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像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
9월이다! 이제 시간의 흔적들인, 단풍이 서서히 물들 차례다. 순연의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만물들을 보라!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갈수 록 日月이 무상을 더해간다.생을 엄밀히 들여다보면 이같은 시간의 무늬들이 한 생을 직조해 나가는 것이다.
이 시에서 '견딜 수 없네'라는 동어반복은 운율과 가락을 더하여 '견딜 수 없는 것들"의 시적 비애의 감흥을 한껏 돋궈준다. 여기서 시인은 '견딜 수 없는 것들'의 조용한 내적 통찰과 함께, 무상한 세계에 대해 오히려 정면대결로 인식함으로써, 최근 시들의 우회와 굴절의 시적 유형 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표현 기법을 취했음을 엿볼수 있겠다. 흘러가는 것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이러한 인 간사의 무상함과 덧없는 생의 쓸쓸한 것들이 바로 우리의 근원이며 본성임을 잘 드러내 보여주 고 있으며 '견딜 수 없네'라는 반복적인 고백으로 하여,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끊임없이 유동할 수 밖에 없는 본원적 존재라는 것을 뼈아프게 숙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속곡조를 들여 다보면, 그곳에 푸르고 차가운 노래의 수맥이 콸콸 쏟아져 흐른다는 것을 곧 감지하게 된다. 그 것은 곧 시인의 내면을 치달리고 있는 치열한 아픔들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슬픔을 슬픔으로 쓸 어내리고 치유하고자 하는 초연과 달관의 맥락이 들어있다. 이는 곧 시인의 생에 대한 쓸쓸한 관 조와 자아를 초월하고자 하는 유연함의 노래라 할수 있을 것이다. 9월이다. 덧없이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사람들이여, 사물 들이여, 견딜 수 없다. 우리의 생이 란, 노래를 부르면서 흘러가는 존재다. 울음을, 아픔을...무상한 희비가 우리를 그렇게 처연히 이 끌어간다.
시인은 1936년 서울 출생. 1965년[현대문학]으로 등단.'고통의 축제''나는 별아저씨''갈등이며 샘 물인'등 다수의 시집과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LA<미주중앙일보>2003.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