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3 03:08 | HIT : 4,060
바람의 팜파탈
신지혜
작두 위 칼날 타는 巫女같다 아까부터 가느다란 전선 줄 위에서 겨울 삭풍 한 줄기 줄타기한다 아니, 줄이 바람 데리고 엄한 神女처럼 호통친다 그렇게 춤사위가 약해서야 삼대천 하늘 서슬이 어디 시퍼래 지겠느냐, 쇠방울소리 요란하게 별들 떨어져 내리겠느냐
답십리 살 때, 앞집 살던 18살 선옥이, 웃을 때 보조개 예쁘던 그녀가 신내림 받던 날, 나 그녀가 맨발로 작두 타는 것 보았다 몇 번 죽을 고비 넘긴 후에야 허공 능선과 구릉 오르내리며 칼날 위 한 리듬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신지체 장애자 아버지와 맹인 어머니와 두 동생 위해 아무리 먼 산간 벽지라도 억척같이 달려가 재수 굿, 성주맞이, 푸닥거리, 진오기, 굿판 걸지게 벌이던 선옥이, 생의 경지가, 더도 말고 작두날 타듯 해야, 삶의 억센 요새 옴짝달싹 못하게 함락시킬 수 있다고 담담히 들려주던 선옥이,
새파랗게 질린 겨울 하늘 밑, 저 바람 살아있는 칼날 위 신명나게 춤추는 법 이제야 터득하게 되었을까 칼끝 벼린 칼날의 날카로움 비로소 읽었다는 듯, 바람이 줄 퉁기며 능란하게 공중제비 휘돌아 치고 있다
-『현대시학』2009년 1월호.-
"Like a lion not trembling at noises, like the wind not caught in a net, like a lotus not stained by water,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Suttanipata-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숫다니 파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