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앞으로 경주하지만 나는 뒤로 경주한다
신지혜
뒤로 걸어보니 알겠다. 풍경들이 뒤에도 남아있었다는 걸
앞만 보며 달려가는 내 뒷모습에
뒤편이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그간 앞만 보고 걸었다
전방 향해 발달한 내 근육, 골격, 자율신경들의 고정관념에만
치열하게 핏발 세웠다는 걸
나 뒤로 걸어보니 알겠다
의식의 뒤편, 상식의 뒤편, 생각의 뒤편, 명예와 부의 뒤편,
입의 뒤편, 코의 뒤편, 눈의 뒤편에 물러서면
이리도 편안하다
온통 앞으로 치달리는 것들의
뒤통수, 뒷목, 엉덩이, 종아리, 발꿈치를
품어주는 내 가슴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승부에 핏발 세우지 않고
타성에 젖어 줄달음치지 않아도
마음 부대끼는 경계도 없이 더 광활해진 품,
당신은 앞으로 경주하지만 나는 뒤로 경주한다
당신은 타인들과 어깨 견주어 경주를 즐기지만
나는 나 자신과의 경주를 즐긴다
속도 재촉하는 진행방향 따로 없는
뒤로 걷는 것이 언제나 나의 전면이다
『현대시학』2009년 1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