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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는 사유한다 비전을 접수한다 / 신지혜----------------------[현대시학] 2002년 9월호2019-07-14 21:49
작성자
2006·08·20 20:17 | HIT : 4,531
     나는 사유한다 비전을 접수한다

     -롱 아일랜드 해안에서- /  신 지 혜


잠언같은 저녁놀이 피었다진다 꽃이파리처럼 내 사유 몇 잎이
뚝뚝, 떨어진다 바다가 쏘아올린 둥근 달, 그 질긴 달빛이 나를
포승지어 우주 어디로 끌고 간다 지금 이 밤을 통째로 압송중이다

나는, 천천히 인적없는 달빛 해안을 끼고 걷는다 내 속은
텅 비어있다 내가 유리잔이다 노오란 달빛이 찰랑거린다
흰 파도와 다투어 잔을 부딪힌다 몇 천년을 두터이 껴입고
반가사유하는 희고 단단한 저 돌들처럼, 내 안에 시퍼런 불이
켜진다 쓸쓸함의 미세한 알갱이들 텅텅 마알간 공명이 울린다

잠시, 물거울에 날 비춰보고 돌아셨는데 금세 나를 잊어버린다
나는 누구일까, 그런 물음표같은 발자국들이 듬성듬성 모래해안을
끌고 바다로 들어간다 나는 허리굽혀 심해를 가만 들여다본다
세상이 그 안에 들어있다 우리는, 마치 서로가 배경이듯, 필연에
의해 마주친, 산란한 눈빛이다 서로가 그리워 흐려진다

쓸쓸한 행성처럼, 내가 허공 중심에 걸린다 푸른 한숨을 뿜어낸다
예서제서, 숨은 존재들이 앞다퉈 사유를 켠다 막막한 우주의
관제탑에 오늘, 내가 비로소 행성의 이름으로 등록된다 나는 반짝
반짝 쇠줄보다 더 강한 사유의 뿌리를 저 우주 물밑에 늘어뜨린다 가끔씩,
찌가 들썩거린다 나는 사유한다 비전을 접수한다


2002< 현대시학>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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