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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맨해튼 구름연고자/ 신지혜---------------------계간[문학과창작]2006년 봄호2019-07-15 19:35
작성자
2006·10·09 02:39 | HIT : 3,078
맨해튼 구름 연고자




신지혜



맨해튼 42번가 시외버스 터미널,
이따금씩 버스가
요란한 기기음을 내며 구내로 들어온다
차가 도착할 때마다 하차한 사람들은 무거운 그림자를
이끌고 종종걸음치듯 패쓰를
빠져나간다

대합실,
색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서둘러 차에 오른다 그러나 갈색 중절모는,
여전히 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랜
행려병자인 듯, 움푹 꺼진 창백한 얼굴에
은빛 수염이 흐느꼈다 얼핏 그의
흰 운동화가 새까맣게 번들거렸다 아마도 그는,
남미 어디쯤에선가 혼자 어둠을 뚫고 걸어왔으리라.
그는 한 자리에 얼음처럼 박혀 꼼짝도 하지않았다

다음날 아침, 한 사내가
의자아래 고꾸라진 채 죽어있었다
경찰이 그의 신원조회를 추적했지만 아무런 단서나
연고자도 없었으므로 그는 불법체류자로 단정됐다
경찰은 서둘러 그를 어디론가 후송하기 시작했다


그가 떠난 후,
가끔씩 대합실 먼지 낀 유리창 밖으로
흰 구름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그의 죽음을 말없이 조문하곤 멀어지더니,
이윽고 낯익은 구름하나 찾아와
유리창 밖에서 쉬이 떠나지 않고 오래 침묵하다가는
한차례 성긴 비를 흩뿌리며,
천천히
떠나가는 것이었다





-계간[문학과 창작]-2006.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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