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밑줄을 긋고 가는 새 신지혜 허공엔 아무 것도 없는 데 밑줄을 긋고 가는 새 , 새는 자취를 감추었는데 허공에 그어진 금, 아직 사라지지 않는다 이리저리 휘몰리는 구름물고기 떼도 결코 지울 수 없는 밑줄 허공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데 어머니 정맥같은 밑줄 한 줄 각인되어있다 어머니, 그토록 원하시던 새가 되신 것일까 나 밑줄 친 허공 한 페이지 꺼내 읽는다 맹물같은 저 허공의 가슴속엔 요동칠 슬픔이나 채 남아 있겠는가 푸른 별무덤 가득찬 허공엔 무수한 생채기 뿐 집 뒤 텃밭에 사약 같은 독초 한 그루 몰래 심어놓고 어머니, 때때로 청산가리 같은 햇빛에 젖은 생 널어 말렸던 것을, 어둑한 골목골목 누비며 이쪽 허공 끝에서 저쪽 끝으로 마른 번개 토하는 구름사자처럼 혼자 포효했던 어머니, 갈라터진 맨발로 장바닥 헤매며 건어물이며 야채를 호곡소리처럼 외치다 귀가할 때마다 저 허공 속곳 깊숙이 넋두리 한 잎씩 꾹꾹 눌러 넣어놓고 음각했던 어머니 이젠 흙을 밟지 않아도 되는 날개 한 벌 받아 입으셨던가 어느 겨울날, 이마에 머릿수건 질끈 동여맨 채 눈발 뚫고 서둘러 이 생의 문밖으로 외출하신 어머니, 저 허공엔 지워지지 않는 밑줄 한 줄 처연히 걸려있다 2018. 계간 시산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