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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얼음이 얼음에게/ 신지혜---------------[현대시학]신작소시집 2006년 8월호2019-07-1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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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01:53 | HIT : 3,552

얼음이 얼음에게 /  신지혜

 

........얼음이 얼음에게 물었어
나는 이곳 연도 수를 모른다 너는 혹여 알고있니...

뇌릿속 긁으며 지나가는 소름끼치는 대답들에
점점 더 민감해진다
달력을 넘기는 바람소리,
얼음속에서도 무소불위로 자라나는 내 손톱들,
몰래 머리칼이 자라오르는 소리,
내 몸속 루트를 타고 야밤에 밀항을 계획하는 혈액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뭐래도 흰 겨울밤이다)

구조 비명을 내질러도 한번 단호한 등을 보인 아버지는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를 먼훗날의 내 아들
이라 생각하고 용서해주기로 한다 아니,
처음부터 그는 용서받았다
모든 아버지神은 얼음이다
그리움은 남아있는 자의 얼음 과자다
웃자라는 도그마의 목을 치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편안한 일상이 천년 백야처럼
계속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뭐래도 흰 겨울밤이다)

나는 한밤 찰과상을 입은 상처를 또 얼음으로 비비며
내리는 눈발사이 눈구멍을 내고 그 침묵의 깊이를 추정
한다 선캄브리아기,
사층리처럼 나는 눈뜨고 있다 나는
암반처럼 굳은 사랑의 기억을 손질해
다시 사랑하기로 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뭐래도 흰 겨울밤이다)

온종일, 오락가락하는 눈구름 반죽을 뜯어 구름사자 만들며
혼자 노닌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뭐래도 도무지 년도를 알 수 없는 흰
겨울 밤이다 나는 너무 깊이 흰 살속에 스며들었다)

 

[현대시학]<신작소시집>2006.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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