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고요가 몰현금을 뜯는다
신지혜
새벽 두시 문득, 너무 조용하다 소음 뚝, 끊어진 세상은 만질 수 없고 닿을 수 없어 허우적거릴수록 점점 더 밑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늪, 외로움은 달다 나 혼자 내게 차 한잔 권한다 혼자 두런두런 이야기해도 넉넉한 고요가 다 받아 삼킨다 가장 깊은 음악이 고요임을 나 비로소 안다
어디선가, 흩날리는 새까만 어둠의 깃털들 자욱히 소요한다 저 허공의 페스티벌 한 판 비경이 펼쳐진다
한밤 고요가 몰현금을 뜯는다 무음의 맛이 더 깊고도 달다
인생 한 권
신지혜
볕 좋은 가을날 나는 창 앞에 앉아 죽은 이가 남긴 책을 펼치며 그가 어느 한때 남긴 인생 한 권을 읽는다
그가 비틀거리며 걸었던 구불구불한 골목들, 흰 치아가 드러난 환한 웃음소리와 그가 만났던 선한 사람들,
어두운 밤, 좌절의 신음소리그가 망연자실 쳐다보았을 하늘,그의 뒷굽 헤진 구두와 기름때 묻은 모자, 그의 뇌리 속 환히 켜졌던 분주한 생각들 거두어내도 다시 쌓이는 외로움 포말들
그의 18번 노래가 완전 소거된 침묵의 두께를 매만지며 나 마지막 책장을 가만 덮는다
죄송하게도 부신 햇살아래서 그의 인생 한 권을
너무 짧은 시간에 다 읽고 말았다
2020년 문학과창작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