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호르몬그래피
김행숙(1970~)
호르몬이여, 저를 아침처럼 환하게 밝혀주세요. 분
노가 치밀어오릅니다. 태풍의 눈같이 표현하고 싶습
니다. 저 자가 제게 사기를 쳤습니다. 저 자를 끝까
지 쫓겠습니다.
당신에게 젖줄을 대고 흘러온 저는 소양강 낙동강
입니다. 노 없는 뱃사공입니다. 어느 곳에 닿아도 당
신이 남자로서 부르면 저는 남자로서
당신이 여자로서 부르면 저는 여자로서 몰입하겠
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세번째, 네번째, 일곱번째 사
다리에서 거지가 될 때까지 카드를 만지겠습니다. 녹
초가 되게 하세요. 호르몬이여, 당신의 부드러운 손
길로 눈꺼풀을 내리시고
제 꿈을 휘저으세요. 당신의 영화관이 되겠습니다.
검은 스크린이 될 때까지 호르몬이여, 저 높은 파도
로 표정과 풍경을 섞으세요. 전쟁같이 무의미에 도달
하도록
신성한 호르몬의 샘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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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야말로, 인간의 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오일에 해당하는 것, 스트레스로 인해 원활하지 못한 인체의 에너지 뇌관은 단연코 호르몬이다. 사기 친 "저 자를 끝까지 쫓겠습니다""당신이 여자로서 부르면 저는 여자로서 몰입하겠습니다"처럼 호르몬 파워의 유연한 파도를 보라. 그 뿐인가. 익살과 풍자로 엮어진 이 시가 이 계절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잠재운다.
김행숙 시인은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1999년『현대문학』에 <뿔> 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춘기] [이별의 능력]등이 있다. -신지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