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바람의 노래
최영철
나는 비록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견딘 매화나무
기다림이 욕되지 않게 해달라 빌었습니다 나는 비록
새가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잃고 먼 하늘을 헤맨 소쩍
새의 소망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 빌었습니다 나는 비록
밥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찾아 온 눈발을 들쑤신 살
쾡이의 배고픔이 슬프지 않게 해달라 빌었습니다 나는
천근만근이어도 좋으니 내 안의 무게에 저것들이 떠메
고온 짐 다 얹어달라 빌었습니다 내 안에 숨긴 고운 꽃
다발 풀어 저것들의 길 위에 뿌려달라 빌었습니다 오래
더 오래 저것들의 등을 어루만질 수 있게 남은 두 손 잘
게잘게 부수어달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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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름다운 바람을 만나본 적 있는가. 타인을 위해 자신은 오직 바람이니, 설령 무엇이 될지라도 누구에겐가 진실의 기도가 되어주는 그런 따뜻한 인연을 당신은 혹여 만난 적 있는가. 또는 이 시속의 바람이 되어 그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간곡한 기원의 노래를 불러준 적 있는가. 오직 자신을 위한 욕망과 아집으로 가득한 이 칠흑의 세계에, 이 시가 횃불을 환히 밝혀준다.
최영철 시인은 경남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홀로 가는 맹인 악사][가족사진][야성은 빛나다][일광욕하는 가구][그림자 호수][호루라기]등 다수 시집과 산문집[나들이 부산]외, 어른 동화[나비야 청산가자]가 있으며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Jun.15.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