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봄비 한 주머니
유안진
320밀리리터짜리
피 한 봉다리 뽑아 줬다
모르는 누구한테 봄비가 되고 싶어서
그의 몸 구석구석 속속들이 헤돌아서
마른 데를 적시어 새살 돋기 바라면서
아냐 아냐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자해충동 내 파괴본능 탓에
멀쩡한 누군가가 오염될라
겁내면서 노리면서 몰라 모르면서
살고 싶어 눈물나는 올해도 4월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이 짓거리뿐이라서―.
***************
누군가에게 헌혈해 본적 있는가. 이 시가 따뜻하다. 봄비 같은 시에 촉촉이 젖어 보라. 마음 언저리를 맴돌던 노래가 터지고 상처로 얼룩졌던 마음이 활짝 펴지리라. 끈끈하게 번져 가는 피의 궤적을, 어두운 곳에서 눈부신 새살이 터져 올라 무성한 숲을 이루기를 간절히 빌어 주고 또 빌어보는 그 봄비 한 주머니.
유안진 시인은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달하」「절망시편」「물로 바람으로」「그리스도, 옛애인」「달빛에 젖은 가락」「날개옷」「월령가 쑥대머리」「영원한 느낌표」「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누이」「봄비 한 주머니」「다보탑을 줍다」등이 있으며, 한국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월탄문학상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Jun.29.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