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커밍아웃
황병승(1970~)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면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 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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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기존의 도식화된 시에서 탈피한다. 기성의 텍스트에 대해 날리는 강력 펀치의 냉소적 시선과 슬픔, 즉 시적 고정 관념을 거부한다. 여기선 랩 가사적 거침없는 배설, 즉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의 세계에 대한 질타, 당찬 조소, 정신적 트라우마, 그리고 거드름 피우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일침 등이 존재한다. 즉 일반상식의 족쇄를 벗어난 독특한 개성의 언어 코드와 시적 프리즘의 제한구역이,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하게, 자유 확장된다.
황병승 시인은 서울 출생. 2003년 [파라 21]로 등단. 시집으로 <여장남자 시코쿠><트랙과 들판의 별>이 있다.<신지혜.시인>
<신문발행일.SEP. 14.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