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꿈속의 생시
윤의섭(1968~)
내가 이 해안에 있는 건
파도에 잠을 깬 수 억 모래알 중 어느 한 알갱이가 나를 기억해냈기
때문 이다
갑자기 나타난 듯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점점 선명해지는 수평선의 아련한 일몰
언젠가 여기 와봤던가 그 후로도 내게 생이 있었던가
내가 이 산길을 더듬어 오르는 건
흐드러진 저 유채꽃 어느 수줍은 처녀 같은 꽃술이 내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녀지를 밟는다
꿈에서 추방된 자들의 행렬이 산 아래로 보이기 시작한다 문득
한적한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바다는 계속해서 태양을 삼킨다
하루에도 밤은 두 번 올 수 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나는 생의 지층에 켜켜이 묻혔다 불려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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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설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기억에 의해, "유채꽃"의 꿈에 의해 그대가 여기 온 것은 아닌가. 시공의 아득한 인연을 통과하여 이곳에. 혹은 틀에 짜여지지 않은 시간의 그물망속에 그대가 선뜻 다녀가는 것은 아닐까. 이 시가 개념과 공간을 넘어 상념의 방랑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윤의섭 시인은 경기도 시흥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졸업.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199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으로「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천국의 난민」「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등이 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