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위독
김왕노(1957~)
위독은 거대한 짐승입니다.
위독한 사이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울부짖는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숨겼던 진실을 각혈하듯 게워내기도 합니다. 위독한 자는 심연에 가라앉은 고래가 되어 잠들지 않는 뇌로 우주를 명상하기도 합니다. 위독하다는 소식이 짐승 한 마리로 먼 길을 밤 새워 왔을 때 나는 날 간 같은 영혼을 던져주려 했습니다. 살 몇 근 거뜬히 베어주려 했습니다.
일생에 몇 번 위독이란 짐승이 되었을 때
스스로의 살점을 녹여 뼈마디까지 드러나게 한답니다.
무엇을 지탱하기 위해 살가죽을 밀며 드러나는 뼈마디들인지
죄마저 끝까지 버티게 해주는 뼈마디의 의도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결국 죽음 속으로 무너져가면서도 왜 쉬 삭아 내리지 않고
마지막 까지 관속의 어둠을 견디는 뼈인지
후략의 말 뒤에 무엇을 덧보태고 싶은지 스스로 묻기도 한답니다.
멀리서 그대 위독이란 짐승이 되어 누워있습니다.
그대에게서 철철 쏟아져 내리는 마지막 말들이 자귀나무 뿌리를 적셨는지
미루나무 뿌리를 적셨는지 창밖의 계절은 독 오른 듯 푸르다는데
그대 이제 이승의 살점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해진 위독이란 짐승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다 말라가 피골이 상접한 짐승
그러나 지금은 본성이 살아나 밤하늘을 향해 우우 울부짖는
지상의 마지막 순결한 한 마리 짐승
나마저 화답해 우우 우는 밤이 산맥을 넘어 강을 건너
저렇게 성큼성큼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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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독자를 무성한 밀림 속으로 견인해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위독을 건너는 일이라 한다. 생노병사는 물론, 시시때때로 도처에서 삶을 위협하는 짐승, 바로 다름 아닌 '위독'이라고 말한다. 어떤 예상과 기대를 무너뜨리고 짐승처럼 달라붙는 위독,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다 말라가 피골이 상접한 짐승'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빽빽한 원시림 속에서 그 뼈마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시는 인간의 처절한 고독과 슬픈 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으며, 위독의 긴박한 상황과 존재론적 슬픔이 온통 푸른 갈기를 펄럭인다.
김왕노 시인은 경북 포항 출생. 매일신춘문예(1992)로 등단. 시집으로[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등이 있으며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Jan.25.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