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시가있는세상>

제목[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나이키/이 원2019-07-27 00:03
작성자
2007·02·15 22:21 | HIT : 1,854 | VOTE : 141

[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나이키

                  이 원(1968~)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는 벽을 향해 뛰어간다 입을 항문처럼 오므렸다 폈다 하며 두 다리를 번갈아가며 들었다 내렸다 하며 뛰어간다 아이들의 그림자는 계속 벽을 밀고 있다 미끄러져 내리지는 않는다 길들은 벽을 피해 양쪽으로 갈라진다 물렁한 벽인 하늘이 녹아내린다 짓무른 길의 가랑이 속에서 그림자를 죽죽 늘리며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뛴다 함성과 발소리가 아이들 앞에 순식간에 벽이 되어 선다 그러나 자궁을 찢고 나온 적이 있는 아이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에 하늘이 고름처럼 엉겨붙는다 아이들의 몸이 점점 더 불어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벽을 뚫고 다시 벽을 세우고 다시 뚫는다 아이들은 진득진득하고 달콤하다 몸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그림자도 벽을 계속 밀어낸다 벽 위까지 튕겨 오르던 그림자는 벽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벽 속으로 스미지 않는다 높고 가파른 벽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벽 너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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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어떠한 사진이나 영상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그 관찰과 묘사가 독특하고 치밀하다.한 장면에 시선을 꽂으면 그림속으로 연속적으로 빨려들어간다. 여기 객관적인 동적 이미지들은 다시 주변상황의 대상과 연계되고, 다시 전체적인 한 장의 이미지 완성으로 드러난다. 이 역동적이지만 조용한 사물들은 슬로비디오를 돌려보듯 천천히, 그러나 창조적으로 변이된다. 곧 한 이미지는 또 다른 풍경의 이미지와 서로 관계하고 반향된다. 벽과 하늘, 아이들의 움직임, 그림자들이 서로가 주고받는 사물들을 추적하고 시간이 변화함에 따라서 탄력적인 이미지들은 풍경속에서 다양하게 자맥질한다. 강력한 관찰과 묘사, 그리고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 존재들간의 특별한 조우에 저절로 흡수된다.

 이 원 시인은 서울 출생,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가 있으며, 현대시학작품상, 현대시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Feb.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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