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살가죽 구두
손택수(1970~)
세상은 그에게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맨발로 세상을 떠돌아다닌 그에게
검은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부산역 광장 앞
낮술에 취해
술병처럼 쓰러져
잠이 든 사내
맨발이 캉가루 구두약을 칠한 듯 반들거리고 있네
세상의 온갖 흙먼지와 기름때를 입혀 광을 내고 있네
벗겨지지 않는 구두,
그 누구도
벗겨갈 수 없는
맞춤구두 한 켤레
죽음만이 벗겨줄 수 있네
죽음까지 껴 신고 가야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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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눈물겨운 살가죽 구두 한 켤레를 보라. 세상에 가장 질긴 가죽구두가 있다면 그것은 맨발이라고 한다. 이 지상에 태어날 때 맨발로 태어나서 행려자가 되어 떠도는 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실어나르는 운반 역할을 하는 것이 곧 살가죽 구두임을 이 시는 인식시킨다. 우리는 지하철 입구에서 또는 광장에서 고단한 노숙자들을 목격하곤 한다. '캉가루 구두약을 칠한 듯 반들거리고' '흙먼지와 기름때를 입혀 광을 낸' 구두. 이 시는 나 자신과 내 이웃의 맨발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이 구두가 어찌 한 노숙자에만 국한되겠는가. 이 시는, 저마다 거친 벌판을 떠돌아다니는 한 순례자일뿐인 우리 자신들에게 따스한 휴머니티와 깊이있는 철학적 사유로 견인해가며 큰 공명을 주고있다.
손택수 시인은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등이 있다. 수주문학상,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신동엽창작상 등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Mar.8.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