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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시인의 詩話/신지혜]내 빈 주머니에 우주를 넣고 ..걷는다./신지혜. (2003년 3월호. 신작소시집)2019-07-29 04: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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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 후드득, 피어나다 외 8편.<신작 소시집>-<2003년 3월호>-현대시학-


[시인의 詩話/신지혜]  내 빈 주머니에 우주를 넣고....걷는다


신 지 혜

 실로 눈부신 겨울 오후다. 나는 오늘도 맨해튼 42번가에서 버스를 내렸다.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하늘을 본다. 전신줄 위에는 늘 하늘 한폭이 걸쳐져 있다. 아무도 그것을 걷어내지 않는다.

 가도의 빈 가지에 앉았던 새들이 인기척이 나자 박차 오른다. 정신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시가 날
아오른다. 허공엔 아무도 없는데 새가 틀어박힌다. 거대한 입이다. 새가 빨려든 그 하늘에 외바퀴의
은륜을 구르며 지나가는 태양, 한결같이 비슷한 마천루 옥상으로 미끄러져 내릴 것이다. 그것이 그의
반복되는 가장 신성한 일상이다. 거기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먼지 낀 은륜을 닦아 다시 하루의 고봉을
차고 오르는 것이다. 외바퀴 위에 올라않은 유유자적한 그가 보인다.

 빽빽한 군중들이 서로 스민다. 천차만별의 얼굴들, 다른 머리 색갈들, 그러나 묘한 합성으로 그들 모
두 어디선가 꼭 본 듯 싶게 낯이 익다. 이들의 시발점은 혹은 종착점은, 행적은, 혹은 이들의 취미와
기호는......우리는 서로 묻지 않는다. 그것만이 이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인들의 불문율이다. 우
리는 서로 배경이다. 그때, 귀를 찢을 듯 앰블런스가 싸이렌을 울리며 정적을 찢는다. 내 안의 정적이
깨진다. 레코드 가게의 확성기에서 westlife 노래가 봇물을 터트린다. 소음의 외벽속은 늘 고요한 허방
이다. 쓸쓸함과 소음이 술렁거린다.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 나는 다만, 시간의 눈금을 지난다. 41번가를
지나 표류한다. 쓸쓸한 것이 이미 내 일상이며 삶이다.

 갑자기 생생하게 반추된 유년이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저마다의 예리한 칸 속에 틀어박혀 빛난다. 그 시절
부터, 사유의 틀 속에서 대다수의 경험론적 사유와 천편일률적으로 집약된 정신적 체재로 묶여진 부류로
세습해 왔던가. 지극히 보편적인 세계관과 상상의 철책 속에 갇혀왔다. 세계일반이 그렇다. 늘상 그 틀을
벗어나 나를 치고 나가려는 끊임없는 내 좌절과 신음들...무엇보다 자유로워야 할 정신과 종교의 영역마저
그렇다. 어떻게 보면 묶이는 것만이 살아남는 일이 아니였던가. 그러니, 하물며 그 문학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파생된 다원론의 대두가 그러했고, 사물구조의 집단적 논리체계가 그러했다.

라즈니쉬를 빌지 않아도, 나는 여기 있으며 여기서 시를 쓰며 여기서 좀더 비우고 좀더 기쁘게 닦으려고 할 뿐,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 무엇에 얽혀 틀에 박힌 문학적 사조와 유형에 얽매일 필요 또한 없다. 모든 사조는 깨
뜨리고 다시 재창조하도록 존재하는 것 아닐런가. 또한 치기적인 용기가 바로 언어창조주의의 근원적 목적이
아닐는지.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은 몰두하면서 살아간다. 내게 있어 시 쓰기는 나를 수행자가 되게 한다. 즐겁게
시를 쓰든, 고통스럽게 시를 쓰든, 성실한 노력으로 수행하면 될 뿐, 그러므로 나는 수행자이며, 시를 쓰는
일련의 과정이 내 삶의 끊임없는 존재확인과 더불어 우주적 자아를 명징하게 관조하고 성찰하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언어라는 창조놀이를 통해서 나와 사물과의 본원적 부조리를 융화하고, 우주와 나와의 상성을 조율
한다. 物我一如를 감득한다. 투명한 시적 심미학과 그 비의의 뿌리와 교감하고 전율할 수 있다면 그 같은 행복
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것이 설령,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세상, 헛되고 헛된 바람 위에, 구름 위에, 물 위에 쓰는
무위라 한들... 영육의 소리에 달관할 수 있다면 바로 여기가 화엄이며 히말라야다. 그러므로 나는 빈 주머니에
우주를 넣고 조용히 침묵을 관조하며 노래 할 뿐이다.


 

 


 

-현대시학. 2003년 3월호<신작 소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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